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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의 ‘상하이 주재원’] 크리스마스 in 상하이

[2024-12-27, 17:46:19] 상하이저널

어렸을 땐 겨울이 겨울답게 추웠다. 추위가 매서우니 장갑과 목도리와 모자까지 착용한 채 ‘피겨스케이팅’ 교습을 받곤 했는데, 한 다리는 뒤로 올려 빼고 한 다리만으로 중심을 잡으며 얼음을 지치거나,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고 뒤로 스케이트를 타거나, 턴을 하는 연습 따위를 했다. 학교 교실 한가운데 위치한 난로 위에선 커다란 주전자 뚜껑이 덜컹거리며 물이 끓었고 천연 가습기 역할을 했다. 미술 시간엔 친구들에게 줄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었고, 집집마다 트리를 꾸몄다. 음악 시간엔 캐럴을 배웠고, 거리에서도 캐럴 메들리가, (아마도) 음반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끝도 없이 울려 퍼졌다. 성당과 교회에선 성가대·성극단의 성탄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엄마는 크리스마스 날이면 가족을 위해 케이크를 준비하셨다. 겨울 분위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낭만 가득한 시절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거리에서 캐럴도 잘 들리지 않고 (저작권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동네마다 아이들로 가득했던 스케이트장도 예전만큼 눈에 띄진 않는다. 아이들 수가 줄어서일 수도, 땅값이 비싸져서 스케이트장 만들 공터가 있으면 부동산 개발을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 싶다. 겨울 기온도 올라가 예전만큼 춥지는 않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덜 크리스마스다운 건 우리나라만의 얘긴 아닌 것 같다. 여러모로 아시아 최고의 대도시 중 하나라는 상하이에서조차 크리스마스는 호텔과 대형 쇼핑몰, 그리고 일부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동네에서만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올해엔 좀 더 성탄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상하이저널’ 기사, 네이버 블로그, 그리고 지인들의 추천을 참고하여 상하이의 유명 크리스마스 마켓들을 가 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가장 전통 있고 유명한 시장인 록 번드 독일 마켓과 북와이탄의 폴라너 마켓 등은 매진되어 입장표를 구하지 못했다. 

대신 ‘상하이 저널 원고’를 써야 한단 핑계로 남편을 꾀어, 24일엔 홍차오톈디의 빛과 그림자 마켓(光影集市)과 징안케리센터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다녀왔고, 전날 다녀와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 걸 간파한 그가 더는 꾀어지지 않은 관계로, 25일 저녁엔 혼자서 BFC 몰의 해리포터를 테마로 한 크리스마스 마켓에 다녀왔다. 

남편은 홍차오톈디의 마켓이 징안케리의 그것보다 더 ‘마켓’다웠고 분위기도 더 좋다고 했다. 나도 일부 동의한다. 가장 멋있는 구조물·설치물들로 가득했던 곳은 징안케리센터였지만, 20분 정도 줄을 서서 입장해야 했고 내부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해리포터 팬이라면 ‘환장’할 만한 BFC 몰도 나름 재미있었다. 덕후인 여동생을 위해 카톡과 국제전화로 그곳에서 판매 중인 해리포터 기념품들을 보여주자, 평소 매사에 시니컬하기 그지없는 그녀가 흥분하며 다양한 이모티콘을 남발했다. 그녀를 위해 표지에 ‘Slytherin’이라고 쓰여 있는 신비한 분위기의 다이어리와, ‘런던에서 호그와트까지 편도 여행(One way travel, LONDON TO HOGWARTS)’이라고 쓰인 러기지 택(luggage tag), 그리고 해리포터에 나오는 각종 문장(紋章)을 입체적으로 디자인한 책갈피 등을 구입했다.  


남편이 슬쩍 투덜대며 말했다. "중국에서 12월 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니라 장진호 전투 승리 기념일"이라고. 그래서 추가로 찾아보니, 1860년 12월 25일엔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들어와 원명원에 불을 질렀고, 1937년 12월 25일엔 일본군이 단둥을 침공했기에, 이 날은 오히려 국가적 치욕의 날이라고 한다. 

중국에선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이 날은 (중국이 아닌) 서양의 기념일이니 보이콧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불매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최근엔 소비가 이미 ‘충분히’ 부진하므로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예전보다 덜한 것은, 중국 젊은 층의 서양 기념일에 대한 의식 변화, 경기 하강에 따른 소비 저하, 수많은 기념일 상술에 따른 피로감 누적 등 여러 원인이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어쨌든 마켓 순례 덕에 남편과 나름 크리스마스이브 데이트도 즐겼고, 동생의 잔잔한 감성을 살짝 건드리는 쇼핑도 할 수 있어서, 이번 성탄은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천주교 모태신앙인 나는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다워야 좋다. 그래야 겨울도 겨울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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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최초의 여성 중국 지부장. 미주팀에서 미국 관련 업무를 하다가, 2007년 중국 연수를 신청, 처음으로 중국땅을 밞았다. 이후 상하이엑스포 한국기업연합관, 베이징지부, 중국실, B2B·B2C 지원실 근무 및 신설된 해외마케팅실 실장으로 3년간 온·오프라인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주말마다 대학에서 전자상거래, 마케팅, 유통, 스타트업 등을 가르쳤다. 이화여대 영문학 학사, 중국사회과학원 경영학 박사. 저서로 ‘박람회 경제학’이 있다.
cecilia@kita.net    [신선영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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