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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104] 사피엔스

[2021-03-12, 12:43:44] 상하이저널
유발 하라리 | 김영사 | 2015년 11월
유발 하라리 | 김영사 | 2015년 11월

사피엔스는 과연 어떻게 인간다워졌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여정에는 역사, 종교, 정치, 경제, 과학까지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담론이 지분을 가진다.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주제를 허를 찌르는 통찰로 꿰어내는 저자 특유의 재치 넘치는 필력에 500여 페이지가 생각보다 쉽게 읽힌다. 하지만 그만큼 책이 전하는 메시지도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에 이 책이 드러낸 불편한 진실을 마냥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그 진실은 우리가 현재 신봉하는 모든 가치체계와 그것을 토대로 한 개인의 욕망의 근원에 대한 난감한 폭로이다.

다른 동물들과 별반 다를 것 없던 변방의 동물 호모 사피엔스의 도약은 추상적 개념과 문자를 결합시켜 공통의 ‘상상의 질서’를 구축한 ‘인지혁명’으로부터 출발했다. 이런 ‘상상의 질서’를 매개로 서로 효과적으로 협력한 덕분에 여전히 개인 플레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른 동물과 호모 속에 속하는 다른 종(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을 멸종시키고 사피엔스는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단위 면적 당 작물의 재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킨 농업혁명은 사피엔스 종의 기록적인 번식을 가져왔고 모든 우주의 섭리를 신과 왕으로부터 구하던 인간은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며 과학혁명을 시작하였다. 이는 곧 생존과 관계된 많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인간에게 안겨주었으며 그 힘에 대한 무한한 신봉과 열망은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를 추진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의 욕망조차 이런 사피엔스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진화 과정의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피엔스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임을 고려할 때 우리가 구축해 온 상상의 질서와 그에 따른 욕망이 우리를 이 정도의 성공으로 인도하였다면 그것들은 꽤 바람직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문제는 사피엔스의 성공은 생존한 개체 수를 척도로 하는 진화적 관점에서만 인정받다는 것이다. 종의 진화에 있어 개체의 행복 따위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서도 우리는 그 성공을 지금만큼 치하할 수 있을까?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지구상의 많은 작물과 동물을 모두 섭취하며 자유롭게 떠돌아 다닐 수 있었던 수렵채집인 조상과는 달리 농업혁명 이후 우리는 지구의 아주 극소수의 작물과 가축 만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전염병에 취약해졌으며 해당 작물과 가축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에 정착하고 그것을 길러내기 위해 전에 없는 상당한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했다. 또한, 자본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 필요 이상의 재화를 소비해야 하며 많은 일자리는 이런 소비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기 위해 존재한다. 다만 우리는 이렇게 더 소비하기 위해 평생 노예같은 노동과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이를 종의 성공을 위해 개체가 희생한 ‘비참한 거래’라고 표현한다.

결국 우리 조상이 가졌던 상대적으로 우수한 신체적 특질과 그들이 누리던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포기하면서 도시와 왕국을 건설하고 자유, 평등, 인권, 돈 등의 상상의 질서를 세웠던 것이 무엇에 도달하려는 노력이었는지 반문하게 된다. 그것이 만약 ‘인간다움’이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를 향하는 것인지도 새삼 궁금해진다. 이제 우리는 불사의 초인류를 우리 손으로 창조함으로써 ‘인간다움’에서조차 도주하려고 한다. 그 다음 존재는 과연 무엇을 욕망하고자 할 것인가. 아마 이에 대한 절대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답을 구하려는 무모한 시도가 줄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자각뿐이다. 우리가 딛고 있는 토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려 노력함으로써 나와 타인,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이는 유용성의 차원이 아닌 사고하는 존재인 사피엔스의 양도 불가능한 마지막 소명을 실천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태람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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