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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떠나요 둘이서

[2024-11-23, 07:04:15] 상하이저널
내게 제주는 늘 한여름이었다. 덥고 습했다. 게다가 북적북적 정신이 없었다. 열 두 살 무렵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부모님 친구분들과 갔던 단체여행부터, 결혼 후 시부모님과 시이모님 내외를 모시고 갔던 시댁 가족여행, 지난해 두 동생네와 함께 보낸 여름휴가에서도 항상 열 명이 넘는 남녀노소와 함께였다. 제주의 풍경과 맛있는 음식은 잠시 스쳐 지나갈 뿐,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느라 동동거리며 분주했던 기억밖에 없다. 그러니 제주는 일부러 또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내게 2박 3일 간의 자유가 생겼다. 남편은 한국 출장을 갔고, 마침 그때 아이는 학교 캠프를 가게 되었다. 혼자 빈집을 지키며 상하이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계절도 가을, 상하이가 아니면 어디라도 좋을 것 같았다. 친구가 나의 들썩거림에 응답했다.
어디로 갈까. 어디든 좋지. 그치, 어디든.


친구와 나는 ‘어디든’이란 목적지만 정해 놓았다. 그것 만으로도 좋았다. 출발 하루 전에서야 ‘어디든’은 제주도가 되었다. 상하이에서 제주까지의 항공료가 외면하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저렴했다. 나는 상하이에서 출발, 친구는 베이징에서 출발, 우리의 집결지는 제주공항!

공항에 도착하니, 지극히 P(무계획 즉흥형)인 우리 둘을 염려한 남편이 친구에게 부탁해 렌터카를 신청해 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우리는 왕복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한 채, 아무 계획 없이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다. 20년 지기 친구와 나는 누가 더하고 덜 할 것도 없이 ‘닥치면 어떻게든’ 주의이다. 계획은 있어도 좋지만, 없다고 불편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좋은 친구이기도 하지만, 좋은 여행 메이트이기도 한 이유다.

큰 감귤 나무가 맞아주는 숙소의 대문을 열고 들어간 집 안은 허브향이 가득했고, 낡은 라디오에서 재즈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아, 우리가 꽤 근사한 여행을 왔구나’라고,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것도 둘이서만, 아이들도 없이, 이렇게 홀가분한 여행이라니!

짐을 풀고, 그 순간 마음이 가는 것으로 저녁 메뉴를 골랐다. 고등어회와 딱새우. 밤에는 야외 자쿠지에 몸을 담갔다. 한 번씩 밤하늘도 쳐다보며, 맥주 한 캔을 들고 나누는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끝나지 않았다.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어서 할 이야기도 더 많았다.


날씨가 좋아 해변 올레길도 걸었다. 가을의 제주는 한산했다. 한여름의 축제로 한바탕 몸살을 앓았을 바다도 휴식 중인 듯했다. 한 번씩 부드러운 파도만일 뿐이었다. 걷다 보니 일상에서 뒤죽박죽 담겼던 마음속 잡동사니와 먼지도 날아갔다. 심연의 고요한 바다를 고스란히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제주 4.3 평화 기념관에도 가볼까. 성당에 들러 성물을 좀 사고 싶은데. 제주 왔으니 흑돼지는 먹고 가야겠지? 갈치는 내일 먹을까? 그 서점은 꼭 가보고 싶었어. 그래? 그럼 가면 되지.

그렇게 우리는 순간순간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따라 좌표를 만들어 나갔다. 계획도 없이 와서 이다지도 알차게 여행하다니. 우리는 자화자찬했다. (사실 서울에서 여행의 기동력과 숙식 정보를 제공해 준 계획형 인간인 남편과 내 동생의 도움도 있었음을)

친구는 베이징에서 3일 동안 계획되어 있었던 일상을 다 멈춰놓고 이 여행에 동행했다. 게다가 여행 내내 “정말 예쁘다”, “너무 좋다” 등의 말을 달고 지냈다. 멍하니 있던 나도 친구의 감탄사를 들을 때마다 한 번 더 주변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그래, 내 친구는 나의 즉흥적인 장단에 환호하며 맞춰주는 사람, 사소한 것에도 감동하는 사람이었지.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같이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내 삶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친구의 매력도 제주의 매력도 다시 한번 발견한 여행, 가을바람에 자유로운 영혼 둘이 홀가분하게 나풀거렸던 여행. 제주 공항에서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타며 인사를 나눴다. “또 오자!”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어디든….

올리브나무(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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