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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열린책들 | 2015년 0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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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작가 하퍼 리의 6세 여아의 시각으로 풀어낸 성장소설 같은, 아니 성인이 돼서야 읽고 있는 나에게는 시대상을 고스란히 녹여 만든 현대사적인 소설이라 정의하고 싶다.
소설 속 두 가지 사건이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전개되는데, 하나는 종교적 이유로 이웃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철저히 자신들 안에서만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소외된 가정 레들리 가족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고, 두 번째는 백인이기에 반드시 옳다는 편파적 판결로 무고한 젊은 흑인의 인권이 유린당하는 상황을 통해 미국 남부 지역의 극심한 인종차별을 그려냈다.
화자인 스카웃은 과거 사고나 치고 다니는, 그래서 남의 비난을 피해 집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부 레들리라는 인물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자라며 그의 집 앞을 지나다니기에도 두려워한다.
스카웃은 오빠 젬과 이웃 또래 딜이라는 자유분방한 아이와 함께 부 레들리를 집 밖으로 끌어내려고 계획한다. 이 도전의 과정에서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막연한 두려움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마침내 닫힌 빗장이 열리듯 공포감과 두려움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변하게 된다.
한편,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는 백인 여성을 강간하고 달아났다는 누명을 쓴 흑인 톰 로빈슨을 변호하게 되고 이로 인해 스카웃은 자신과 가족을 향한 이웃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게 된다.
이는 스카웃이 아빠의 행동에 의문을 갖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저자 하퍼 리의 아버지는 흑인을 변론한 경력이 있는 변호사였다. 저자는 작품 속 소녀를 통해 증거가 명명백백함에도 불구하고 약자에게 가해지는 어른들의 불합리한 집단 이기주의를 소설 속에 녹여낸다.
변호사 애티커스의 용기 있는 태도는 당장 힘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항상 정의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적 결말에 아쉬움을 갖지만, 잘못된 역사를 답습하지 않으려는 진보적 태도와 함께 여전히 만연해 있는 종교분쟁,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인에 대한 편견 등 당장은 해결되지 않더라도 꾸준히 용기와 뜻이 있는 이들이 함께 바꾸어 가야 한다는 어른으로서의 의무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왜 ‘앵무새 죽이기’인가 하는 의문은 앵무새를 향해 새총을 겨누는 스카우트에게 아빠와 모디 아줌마가 해준 말로 정리된다.
“앵무새들은 인산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마음에 남는 저서 속 몇 문장을 되뇌며 훗날 다시 읽으며 느낄 감정의 포인트는 또 어떤 문장들이 될지 기대해 본다.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욕설은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가를 보여줄 뿐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해.”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들에겐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 해. 하지만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란다.”
우리도 애티커스 변호사와 같이 정의를 향해 단호하고 부드럽게 다가갈 용기를 가질 수 있길 바란다. 우리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집단적 사고에 젖어 들지 않고 자기들만의 순수하고 거침없는 사고로 어른들에게 부끄러움이 뭔지 일깨워 줄 수 있길 바란다.
김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