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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 창비 | 2022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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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한 책일 경우 오히려 읽기 싫어질 때가 있다. 그것도 유명인들의 행보속에서 덩달아 관심을끈 책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가끔은 의도치 않게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가 쌓여 ‘내가 읽었었나’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두 경우 다 해당되었다. 나 하나쯤 안 읽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가, 어느 순간 ‘대략읽은 거나 마찬가지지’ 하고 있었다. 한국 방문 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을 서성이다가 정가보다 30% 저렴한 가격을 확인하고, 냉큼 구입했다.
영락없는 MZ세대 같은 이름, 정지아. 알고 봤더니 정지아 작가는 곧 환갑이다. 어머니가 빨치산으로 활동한 지리산에서 지를 따오고, 아버지가 활동한 백아산에서 아를 따와 정지아가 되었다는 사연이 있었다. 지아란 이름이 더 이상 발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태어나보니 부모님이 빨치산이었는데(심지어 연좌제가 살아있던 시절), 이름 또한 빨치산의 활동무대에서 따 왔다니. 평생 사회주의자이고 싶었던 부모님과 뗄 수 없는 역사적 숙명의 포스가 넘치는 이름으로 불리며 평생을 살아왔으니, 그 짐이 참 많이 무거웠을 것 같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정지아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일 동안 장례를 치르면서 발생한 일과 그 일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결국 시간은 3일이지만, 이야기는 빨치산 부모님의 전생을 담고 있다. 이렇게만 소개하면 소재만큼 무겁고 뻔한 이야기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오히려 시트콤에 가까울 정도로 경쾌하고 재밌다.
작가는 최대한 가볍고 웃기게 쓰려고 했다고 한다. 책 표지 주문도 딱 한 문장, “빨치산의 이야기인 줄전혀 모르게 하라”였다고. 결국 빨치산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이 이야기를 쓴 것이고, 작가의 타고난 유머 감각과 필력이 더해져서 목표는 달성하고도 남은 듯하다.
소설 전체를 가득 채운 전라도 사투리는 리듬감 있게 읽히면서 재미를 더했다. 물론 웃기기만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이 이야기의 기저는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이다. 여러 번 읽어보아야 무슨 의미인지 간신히 알 수 있는 대화도 있었지만, 대체로 날것의 사투리는 대화 그 이상의 것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회주의 오지랖 덕분에 찡해지기도 하고, 무엇인가 가슴을 눌러 깊은 한숨이 나올 때도 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닦고 있을 때도 있었다. 유시민 작가는 “발라드 안에 숨겨 놓은 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지아 작가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엄연한 소설이라고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실존 인물과 가공 인물이 얽기 설기 섞여 누가 실존 인물인지 누가 만들어진 인물인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런 것을 추측해 보는 것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또 하나의 수확이라면, ‘하염없이’ 란 단어의 하염없이 깊은 슬픔의 의미도 발견했고, 새로운 단어도 알게 되었다. ‘항꾼에’.... 읊조려볼수록 정겨워지는 단어다.
“항꾼에 또... 올라네.” 항꾼에, 올라네, 말 사이의 짧은 침묵이 마음에 얹혔다. (P.50)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 번만 와도 되는데. 한 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P.197)
*항꾼에: [함께, 같이]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 [국어사전]
김경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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