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박물관에서 韩中 교류 흔적 찾기
박물관을 탐방하고 감상하는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얼마나 중국의 역사와 유산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아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 리터러시(literacy)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관람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넘어, 전시된 유물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 박물관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중국 역사문화와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칼럼에서는 화동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며 박물관 문해력을 키워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3 닝보박물관
천년 전 고려 사신들의 흔적, ‘닝보’가 간직한 韩中교류 역사
한국 교민들은 주재원으로 중국에 파견되거나 한중 무역업에 종사하며 이 땅에 발을 디뎠다.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때에도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사신의 신분으로, 또 상인으로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그들이 모여들던 곳은 오늘날의 베이징도 상하이도 아닌, 저장성 닝보(宁波)였다. 중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을 지키는 중요한 해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시박사(市舶司)’가 닝보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닝보를 찾는 일은 그렇기에 조금은 벅찬 감동을 준다. 천년 전 고려의 사신들이 오갔던 길목, 먼 항해 끝에 닻을 내리고 걸었던 땅 위를 함께 걷는 것 같은 느낌에서다. 지금 닝보박물관에는 한중 교류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박물관 곳곳에 전시된 유물 역시 한중 교류의 역사를 품은 도시, 닝보의 모습을 고요하게 전한다.
[사진=닝보박물관 전경]
중국 최초 프리츠커 수상 건축물의 매력
2012년, 왕슈(王澍)는 닝보박물관 디자인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중국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외관에서부터 현대적인 콘크리트와 낡은 벽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듯한 독특한 미감을 자아낸다. 학예사는 이 박물관이 특별히 주변 폐가에서 수집한 오래된 벽돌과 기와를 재료로 사용했다고 소개하면서 닝보의 역사성을 간직한 것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박물관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발밑에 깔린 자갈과 물에 비치는 외벽이 겹쳐지며, 마치 항구도시 닝보에 막 닻을 내린 듯한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내벽에도 닝보의 전통 건축기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나무를 대여섯 개씩 엮어 눌러낸 자국으로, 이는 내벽을 평평하게 만드는 닝보 지역만의 고유한 방식이라고 한다. 이 작은 흔적들은 박물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지역 역사와 건축가의 고민을 묵묵히 담아낸 살아있는 유물임을 말해준다.
[사진=닝보박물관에 전시된 도기병 일괄]
과거 항구의 숨결을 담은 도기병
가득 쌓인 수출품들의 무게를 재고, 세금을 정산한 후 출항을 기다리던 옛 항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박물관을 거닐다 보면, 어느덧 한 전시장을 가득 채운 작은 도기병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도기병들은 송나라 조정에서 운영하던 주류 제조기관인 ‘도주무(都酒务)’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로, 당시 정부가 직접 관리하던 주조장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작은 병들은 선원들이 긴 항해 중 마셨던 술을 담은 일종의 ‘일회용 술병’이었다. 매일 밤 고단한 항해를 잊기 위해 병을 기울였을 선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도기병들이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출토된다는 사실이다. 당시 이 병을 손에 쥐고 넓은 바다를 항해하던 수많은 선원들의 삶이, 병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듯하다. 쉽게 쓰고 버려지던 이 ‘맥주병’ 같은 도기병들이 이제는 해양 교류의 생생한 증거로 남아, 과거의 생활과 문화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진=국립제주박물관에 전시된 도기병 전시 전경]
술잔 속의 철학, 넘침을 경계하는 지혜
술병이 전시된 공간을 지나 걷다 보면, 청나라 시대에 제작된 독특한 술잔인 공도배(公道杯)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술잔은 외면이 청화안료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일정량 이상의 술이 담기면 내부에 설치된 관을 통해 액체가 흘러나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술잔 속의 미륵 조형물이 이를 감춰주는 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와 유사하게 조선에서도 사이펀의 원리를 적용한 술잔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만들어졌는데, 바로 계영배(戒盈杯)다. 계영배는 지나치게 많은 술을 따르면 액체가 모두 새어나가 버려 과한 욕심을 경계하고 적절한 한도를 지키는 덕목을 상징한다. 이렇게 과유불급의 지혜가 담긴 술잔을 통해, 한중 양국은 욕심을 경계하는 절제의 미덕을 나누어 왔다.
[사진=사이펀의 원리를 사용해 제작한 청나라 시기의 청자공도배(上)]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백자계영배(下)]
고려청자가 도착한 항구 닝보
닝보는 단순히 출항지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와 상품이 흘러 들어오는 도착지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청자를 비롯해 여러 문화적 산물이 닝보로 들어오며, 이 도시는 문화 교역의 쌍방향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창구로 자리잡았다. 고려청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닝보는 고려에서 만든 도자기가 다시 중국 각지로 유통되는 교역 중심지로도 기능했다.
고려청자를 마주한 순간,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이 먼 바다를 건너 닝보까지 흘러온 여정이 손에 잡힐 듯 생생히 느껴졌다. 12세기의 단아한 순청자에서부터, 화려한 상감 기법이 대대적으로 유행하던 13세기의 도자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고려청자가 닝보에서 출토된 것은 이 교류가 적어도 100년 이상 지속되었음을 말해준다.
[사진=닝보 시내 유적 출토 고려청자]
전시장을 나서며
천 년 전 고려의 사신과 상인들이 오갔던 길목을 오늘날 우리가 다시 밟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감동을 자아낸다. 닝보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단순한 역사적 유물을 넘어, 한중 교류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고려청자와 도기병, 그리고 절제의 상징인 술잔 하나하나는 서로 다른 시대의 삶과 문화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닝보는 출항지이자 도착지였고, 수많은 문화와 이야기가 오갔던 쌍방향 교류의 중심지였다. 오늘날 닝보박물관은 이 역사의 흔적을 전달하며, 한중 교류의 긴 역사를 다시금 마주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주소: 浙江省宁波市首南中路1000号
글, 사진_ 성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