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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194] 오래된 유럽

[2023-05-28, 07:10:32] 상하이저널
김진경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11월
김진경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11월
“완전한 이방인으로 살 것인가, 반쪽짜리 등방인으로 살 것인가”

(*등방인: 기체, 액체, 유리 따위로 된 물체의 물리적 성질이 물체 내의 방향에 따라 다르지 아니하고 같음. 이방의 반의어)

코로나 시대에 타국에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나라가 내가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낯선 체제로 운영되는 사회라면 곤란함은 배가 된다. 나는 2020 년 1 월 27일에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이좋게 상해에 입성했다. 시간 도둑 코로나 팬데믹으로 물리적 시간은 무의미하게 2 년 이상이나 훌쩍 흘러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고장난 시계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코로나 초기부터 줄곧 지속되는 중국 정부의 국경 봉쇄 정책 때문에 분노하면서도 내가 중국인들에 대해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동질감 혹은 애정은 깊어진다는 점이다. 체제에 복종하고 정부 지침에 기꺼이 순응하는 중국인들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하는 오묘한 모순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

최근(2022 년 초) 나는 흥미로운 도서 한 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코로나 시대를 다룬 신간 <오래된 유럽>이라는 책이다. 2021 년 11 월에 출판된 따끈따끈한 신상인 <오래된 유럽>은 코로나 시대에 오랜 세월 묵혀있다 발현되고 있는 유럽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그 중에서도, 오늘의 책 소개 글에서는 1 부 인종차별과 4 부 다문화-아시아 여성에 대한 편견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1부- 코로나 19로 불붙은 아시아인 차별

저자 김진경은 스페인 남성과 결혼하여 두 아이와 함께 스위스의 취리히에 거주 중이다. 그녀(그/그녀와 같은 구분이 성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나는 이것도 표현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는 2017년, 딸 아이의 유치원에서 열린 재롱 잔치에 참석했다가 경악할 만한 노래를 듣게 된다. 아이들이 모두 모여 스위스 국민 동요를 부르는데, 그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세 명의 중국인>, 스위스 국민 동요에 중국인의 출현은 무엇인가. 그 가사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있는 세 명의 중국인
거리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네.
경찰관이 와서 물었지, 대체 뭔 일이야?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있는 세 명의 중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독일어 권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이 동요의 역사는 20 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구전 동요의 특성 상 여러 버전이 있다. 그런데 일부 오래된 버전에서는 콘트라베이스 대신 '신분증(pass)을 안 갖고 있는' 중국인으로 불려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독일어 발음으로 '파스'와 '콘트라바스'는 운이 맞는다. 저자는 아마도 동요에서 드러나는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파스' 대신 '콘트라바스'로 어휘를 변경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주장이다. 저자가 난감했던 것은, 그 자리에 동양인 엄마는 그녀가 유일했기 때문인지 다른 모든 엄마들이 그 노래가 나오는 내내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봤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것이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언급하며, 이 동요가 아이들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물론,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차별적인 요소가 충분히 드러나는 노래임에는 틀림없다. 

러나 한 나라의 구전 노래를 차별적 요소가 가미 되어 있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시대에 따라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20 세기 유럽 사회엔 불법 체류자인 가난한 중국인들이 많았을지 몰라도, 21 세기 유럽에선 중국인들이 유럽 대륙을 몽땅 사들일 기세다. 그러니 파스에서 콘트라베이스로 가사가 바뀐 것처럼, 콘트라베이스가 등기부 등본 앨범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코로나 시대에 부각된 인종차별에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 또한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백인에 의한 아시아인 차별보다 흑인에 의한 아시아인 차별에서 비롯된 사건의 피해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차별 대우를 받으면 시시때때로 “black lives matter” 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폭동을 일으켜 온 나라를 공포와 불안에 휩싸이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 아시아인들의 생명과 안전은 소중하지 않기 때문에 흑인들은 아시아인을 공격하는 것인가. 나는 이런 흑인에 의한 아시아인(특히 사회적 약자인 아시아 여성이나 노인)을 향한 증오 범죄 소식을 접할 때마다 “black lives matter” 이라는 구호가 힘을 잃는 강력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인 증오 범죄를 저지른 흑인들은 올바르게 살아가며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고자 애쓰는 모든 흑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셈이다.

유럽 국가들에는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만큼 인종 차별의 양상 또한 다양하다. 동양인과 흑인에 대한 차별 외에도 무어인(짙은 구릿빛 피부에 까맣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지닌 북아프리카계 무슬림)에 대한 차별 양상도 보인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유럽 국가들에서 국민 과자나 초콜릿의 명칭과 캐릭터의 연관성이 인종 차별적 요소로 인해 큰 논란 거리가 된 적이 있다. 2020 년 6월, 스위스에서 초콜릿 과자 하나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겉은 동그랗고 매끈한 초콜릿으로 돼 있고, 속에는 달걀 흰자와 설탕으로 만든 크림이 들어있다. 이 과자 이름은 '모렌코프(mohrenkopf)'다. 

독일어로 '모렌'은 무어인을, '코프'는 머리를 뜻한다. '무어인의 머리'가 과자 이름인 것이다. 둥글고 까만 과자를 흑인의 머리에 비유한 제품 이름 때문에 모렌코프는 그 동안 툭하면 인종차별 논란에 시달려 왔다. 이에 대해 한 스위스인 친구에게 저자가 의견을 물어보니, “까만 머리처럼 생긴 과자를 까만 머리에 비유한 게 무슨 잘못인가요. 누가 하얀 초콜릿으로 똑같은 과자를 만들어서 스위스인의 머리라고 이름을 붙인다 해도 나는 전혀 신경 안 쓸 겁니다.” 라고 대답한다. 나는 백인도 아니고 스위스인도 아니지만, 소신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전에도 한국 유투버들 사이에서는 유럽 여행에서 겪은 동양인 차별, 비하 영상을 올리며 구독자나 시청자들의 공분을 부추겨 조회수를 올리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았고 지금도 빈번하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일어나는 차별은, 엄밀히 말하면 인종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계급(계층)에 대한 차별이다. 내가 방글라데시인(방글라데시를 무시하는 예시가 아님)이라도 슈퍼카를 몰고와 체크인 하면, 유럽의 어느 호텔에서도 그에 대한 인종차별 대우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스위스인 거지라면, 어느 호텔에서도 나를 그냥 들어가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아시아인들이 간과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어떤 복장을 하고 어디를 가든 나는 인종차별 없이 백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 말은 맞는 말이지만, 실질적으로 국내에서도 실현되기 어려운 명제이다. 개개인의 행색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 아닌가. 물론, 인종차별은 존재하고 개선되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상,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차별 현상을 종식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4부-코로나 시대와 다문화

저자는 전 세계인이 가입만 하면 페이스북 프로필을 연동하여 온라인 소개팅을 할 수 있는 앱 '틴더'를 예로 들어, 가장 선호도가 높은 인종과 성별은 아시아 여성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코미디언 백인 여성 에이미 슈머가 2012 년 자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나는 아시아 여자의 경쟁 상대가 못 된다”면서 “아시아 여자들은 수학을 잘 해. 부드러운 머릿결을 타고났지. 웃을 때 입을 가려서, 여자들이 말 하는 걸 싫어하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아시아 여자들은 질이 가장 좁아. 아무도 상대가 안 돼.” 이라는 발언을 했다며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옐로우 피버'를 부추긴다는 입장이다. 

자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런 편견을 아시아 여성 스스로 내면화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녀는 우연히 한 일본인 여성이 “우리가 질이 좁아서 남자들이 좋아하잖아.” 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어느 태국인 여성의 입에서는 “우리 피부가 일부러 태닝한 것처럼 매끈한 갈색이라 남자들이 좋아하잖아.” 라는 말이 나온 적도 있다. 그녀는 어쩌다가 '우리'가 제 발로 편견에 발목 잡혔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이 편견에 일조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며 이 편견이 최소 한 세기 넘는 뿌리 깊은 역사를 갖고 있어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견을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옐로우 피버의 근원은 19 세기 제국주의 시절 일본 항구에
도착한 유럽 백인 남성이 게이샤를 처음 만나 받은 인상이다. 또한, 미국에서도 최초의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매춘부와 연결된다. 19 세기 중반부터 미 서부 개척 및 금광 채굴 때문에 중국인 저임금 노동자가 많이 몰려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중국 노동자들은 중국 본토에 아내와 가족을 두고 혼자 미국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들을 상대로 일하는 중국인 여성 매춘부들이 미국으로 유입되었다. 이는 곧, 미국인들 사이에서 '일자리를 빼앗은 중국인 남성과 비도덕적인 중국인 여성'이라는 반감이 만연하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19 세기 제국주의 시대가 아닌 21 세기 초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는 매력적인(혹은 멋있는) 아시아 여성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일부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특권이 아니다. 오늘 날, 아시아 여성과 국제 연애나 국제 결혼을 하는 서양 남성들은 제국주의자들인가. 이제는 기록이나 삽화처럼 정적이고 사실 여부도 명확하지 않은 자료들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검색이 가능한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19 세기 유럽 백인의 눈에 비친 게이샤들의 이미지에서 비롯된 편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적합한 지 의문이다. 따라서 저자 김진경이 말하는 '옐로우 피버'는 지구촌에서 점차 특수한 경우가 아닌 자연스러운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아시아 여성과 백인 남성 사이의 국제 연애 혹은 국제 결혼과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저자가 스위스에 거주하면서 한국 언론에 칼럼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수집해 출판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굉장히 착잡하고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스위스 사회 또는 유럽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글이 쓰여졌다는 점, 둘째, 10 년 이상 한 나라에 거주하면서 스스로를 완전한 이방인 혹은 사회적 약자(저자에 의하면, 스위스 사회에서 외국인-스위스인이 아닌 모든 유럽인 포함은 일종의 국가 위협으로 여겨짐. 아시아 여성)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셋째, 객관적인 글쓰기가 아닌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에 편향된 글쓰기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주관적인 글쓰기라는 것에 대해 책 속의 간단한 예를 하나 들고 마무리 하려한다. 2009년, 저자가 남편의 고향인 스페인 발렌시아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이다. 그녀는 남편의 한 친구에게서 “한국에서는 다들 지푸라기로 만든 집에 살지?” 라는 질문을 받고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렇듯 그녀는 교육 수준이나 경험과 관계없이, 많은 유럽인이 아시아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2009 년 당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대도시에서는 한국의 경제적 성장과 발전을 이미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특히, 스페인은 이민족(북아프리카의 무슬림)과 무려 800 년 가까이 공생했던 역사적 사실 덕분인지(외국인 관광 소득 덕분이기도 하다.)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외국인에게 개방적이고 호의적인 성향을 보인다. 

비록 저자는 교육 수준이나 경험과는 무관하게 많은 유럽인이 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고정관념이나 편견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남편의 친구처럼 그것을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무례하게 표출하는 행위는 교육 수준이나 개인의 성품과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가 정말로 한국인들이 초가집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해 던진 질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질문에 당황하는 대신(당황하는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기 때문), 보다 재치 있는 대답을 건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응, 맞아. 너희 스페인 사람들은 다들 동굴 속에 산다며?”

문유선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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