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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푸른 봄날의 따바이(大白)들!

[2022-04-14, 20:29:31] 상하이저널


2022 코로나19 자원봉사 체험기

 

내가 있는 곳은 34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창닝구 소재의 작은 아파트다. 우리 아파트는 노인 인구가 많고 토박이들이 많은 곳이다. 足不出户가 시작되면서 우리 동도 34명의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주민위원회에서 봉쇄 기간 동안 봉사자를 찾는다며 글을 올렸지만, 하루가 지나도 지원자는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봉사자가 할 일은 쓰레기 버리는 것과 택배 가져오는 단순한 일만 하면 된다는 설명과 함께 다시 한번 지원을 독려했다. 여전히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동에 젊은 사람으로 칠 수 있는 집은 딱 세 집. 그 중에서도 아기 있는 집을 빼면 딱 두 집뿐이었다. 한국에 있는 남편도 절대 나서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중국 친구들도 위험하니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이틀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는 걸 보니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집에만 있긴 하지만 애들 온라인 수업 서포트도 소홀할 수 없는 일과 중 하나다. 수시로 프린트도 해줘야 하고, 깨져 나오는 폰트는 컴퓨터를 열어 이미지로 다시 출력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도 거쳐야 하고, 선생님 지시 사항도 받아야하고, 무엇보다 점심시간이 다른 두 아이의 밥도 챙겨야 한다.


‘왜 아무도 안 나서는 거야? 1일부터 5일까지만 하면 된다는 거지. 에라 모르겠다. 5일 그까짓 거, 금방 지나가겠지 뭐….’


“제가 할게요!”


코로나 백신 2회 접종을 확인받고 봉사자 단톡방에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몇 시간 후에 또 다른 지원자가 나타났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회의엔 참석하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백신접종을 하지 않아 봉사를 할 수 없단다.


‘난 전생에 머슴이었나 뭔 일복이 이리 많아.’


내 쓰레기를 남이 버려주는 것보다, 내가 남의 쓰레기 버리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게 되어 있다. 내가 모아서 우리 동 밖에 설치되어 있는 쓰레기통에 넣기만 하면 되니, 버릴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봉사에 임했다. 택배도 며칠은 오는가 싶더니 이젠 택배도 거의 없다.


‘봉사자가 별거 아니었구나.’


생각하는 순간, 시도 때도 없이 내려오는 핵산 검사, 자가 키트 검사 통보가 점점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봉사자 단톡방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댔고, “봉사자 모여!”하면 바로 방호복을 입고 뛰어 내려가야 했다. 아침 6시부터 자가 키트를 나눠주고, 검사 결과 보고하고, 문제가 생긴 집이 있으면 또 가서 봐주느라 아침이 그냥 지나갔다.


‘아 참! 애들 아침밥을 깜박했네.’ 


늦은 아침밥을 하려는데 또다시 단톡방이 울려댄다. 오늘부터 처음 실시하는 핵산마(核算码)에 대해 회의를 하니 바로 텐센트 비대면 회의로 들어오란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점심이다. 아이들은 12시가 되어서야 첫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제 나도 한 술 떠야지 하는데 갑자기 오늘 또 정부 구호물자가 도착하니 대기하라는 문자가 왔다. 마음이 급해지는 와중에도 밥은 맛있고 잘도 먹히는구나.


“等通知叮咚鸡)”


모든 공지사항은 항상 제목만 있고 시간이 없다. 이게 사람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점심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시끄러워진다. 다들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나 보다. 아파트 입구로 나오라는 공지에 바로바로 댓글이 달린다. 완전 무장하고 파란색 이케아 캐리어 끌고 집집마다 채소박스를 나눠 주었다. 이젠 날씨 때문에 방호복 입는 게 쉽지 않다. 마스크에 페이스 실드까지 하고 나면 숨이 턱 막힌다.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저녁은 뭘 먹나 하는데 또 봉사자 방이 시끄럽다.

 

 
“오늘 오후 핵산 검사 실시. 구체적인 시간은 等通知!”

 

‘그럼 아침에 자가 키트는 왜 했는데? 아니 한 번에 다 얘기하면 안 돼??’

또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저녁 9시가 되니 봉사자들도 슬슬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오늘 하긴 하나요?’ 모르는 건 주민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오늘은 핵산마를 처음 실시하는 날. 핵산 검사 공지가 뜨자마자 가가호호 방문해 핵산마를 깔아드렸다. 오늘 하루 종일 다른 지역 친구들로부터 핵산마 오류에 대해 듣고 있던 터라 빨리 끝나지 않을 것이란 짐작은 하고 있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차라리 내일로 미루면 안 되냐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을 때쯤 드디어 의사가 30분 후에 우리 아파트 도착이니 방호복 입고 내려오란 공지가 내려왔다. 나도 우리 동에 바로 공지를 내렸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나는 우리 동 사람들에게 핵산마, 신분증을 모두 지참할 것을 주문했고, 모두가 흔쾌히 따라 주었다. 신분증을 지참한 덕에 우리 동은 일사천리로 핵산 검사를 끝냈다.  


모든 핵산 검사를 마치고 소독하고 집으로 오니 밤 12시 30분.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게 머선 129’

 

이말이 절로 나오는 하루를 보내고 나니, 그냥 끝까지 가만있을걸 내가 왜 나섰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쓰레기 버리고 택배만 좀 옮기면 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은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이런 날 잠은 더 안 온다. 자는 둥 마는 둥 몇 번을 뒤척거렸더니 아침이다.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항상 놀라면서 깬다. 혹시나 나만 공지사항을 못 봤을까 봐서 눈 뜨면 핸드폰부터 들여다 본다. 요 며칠 경험을 해 보니 봉사자들이 10개의 공지사항을 전달받으면 정책변화, 시간의 변화 등으로 5개 정도의 공지사항 만이 아파트 주민에게 전달된다. 처음엔 이 체계적이지 않고 시간만 잡아먹는 하달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한테 10개의 전달 사항을 보내는 주민위원회는 위로부터 20개의 전달사항 중에 추리고 추려 우리에게 10개의 정보가 전달되는 거라고 한다. 모든 것이 즉흥적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봉사자 보다 더 힘든 건 바로 주민위원회와 아파트 관리소 사람들이다. 공지 시간을 보면 24시간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들도 우리도 돌봐야 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인데 24시간 뺑이 돌고 있는 느낌이다.   


‘어제 키트검사, 핵산검사, 구호물자까지 나눠줬으니 오늘은 아무 일 없겠지.’
“띵동~”


부모님 드릴 계란을 주문했는데 박스로밖에 살 수가 없어 박스로 샀으니 다른 필요한 사람에게도 나눠 달라며, 계란은 이미 아파트에 도착했으니 가져가서 나눠 달라는 문자가 왔다. 본인은 다른 곳에 살고 있고 부모님만 우리 동에 살고 있는 아들의 문자였다. 이 계란 집도 내가 수소문해서 찾아 가르쳐 드린 집이었다.


‘그래… 나도 계란 더 있으면 좋지 뭐… 다른 사람도 필요하겠지 뭐…’


계란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문받고, 문 앞까지 가져다주고, 이제 수금을 할 차례. 단톡방에 수령 금액을 올려 누르기만 하면 돈이 보내지는 방식을 선택했다. 나 나름대로 어르신들께 가장 편한 방법이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순전히 나의 착각. 다시 옷 갈아입고 방호복 입고 가가호호 방문해 수금을 하는데,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처음엔 핸드폰을 내밀며 위쳇페이으로 하겠다고 한다. 나 역시 핸드폰을 내밀며 보내시라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생각처럼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결국 나는 현금을 받아왔다. 이것이 얼마 만에 보는 현금인지….


‘도대체 하루가 어떻게 가는 건지, 오늘은 정말 아무 일 없겠지.’
“띵동~”
“급한 약만 주문 받아주세요. 30분 후에 병원 가서 약 받아 올 겁니다.”


주민위원회의 공지에 또 약이 필요한 분들 주문을 받고, 병원에 약이 있는지 확인을 받고 난 후, 가가호호 들러서 의료보험 카드를 받아 주민위원회 사람에게 전달해 주었다. 오후 1시에 약 타러 간 주민위원회 사람으로부터 사진 한 장 올라왔다. 병원 앞에 방호복 입은 사람들의 줄이 끝도 없는 사진이었다.

 

 
푸르고 푸른 하늘에 그렇지 못한 따바이(大白)들!


저녁 6시 드디어 약이 아파트에 도착했다. 밥 먹다 말고 옷을 갈아 입고 방호복 입고 약을 가져다 주민들께 배달해 드렸다. 역시 수금은 현금. 그나마도 약을 구한 주민들은 천운이라고 해야겠다. 구할 수 없는 약도 많고, 의료 보험 카드 없는 사람은 있는 약도 구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믿을 것이라곤 봉사자밖에 없다. 봉사자들은 이 동 저동 약을 구하느라 진땀을 뺀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기쁜 일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꼭 도움이 돼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일부 단톡방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날 때가 있다. 모두들 스스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쓰레기를 문밖에 내놓는 일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내가 꼭 남의 손을 빌려 음료수를 사다 먹고, 과일을 사다 먹고, 담배를 날러 달라고 해야 할까? 먹고 사는 일이 달린 건 봉사자로서 비가 와도 날씨가 더워도 해야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빨리 쌀을 나르고 채소를 나르고 계란을 나를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 외에 것들에 대한 솔직한 심정은, 전혀 가져다주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과일 없이 못 사는 사람도 지금은 과일 없이 살아야 하고, 담배 없이 못 사는 사람도 지금은 담배 없이 살아야 하고, 편식이 심한 사람도 지금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시기에 놓여있다. 정말 더럽고 치사하다. 쌀이 떨어져가는데도 미안해서 못 시키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안하고 감사하다며 음료수에 담배까지 주문한다. 시켜서 미안한 마음, 가져다줘서 고마운 마음, 잠시 접어 두고 내가 정말 꼭 필요한 것만 생각해 보자.


20리터의 생수통 보다 350미리짜리 콜라캔이 나를 더 힘 빠지게 만든다. 어제는 옆 아파트의 관리소 소장님이 과로사하셨다는 부고가 날아왔다. 첨부된 동영상엔 해당 아파트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물건 앞에서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가장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시기에 열심히 일 한 죄밖에 없다. 이 상황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불안한 마음에 살수 있는 건 일단 사고 보자는 심리는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에 엄청난 절제력과 조절 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내 친구 아파트처럼 배송 물건 하나당 20원씩 챙겨주는 아파트는 얘기가 다르다. 이런 아파트는 분위기 따라가면 될 것이다. 돈을 준다 해도 안 받는 아파트도 많기 때문에, 만약 내가 이 물건을 받을 때마다 정문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비용으로 20원씩 낸다면, 과연 시켰을까를 한번 생각해 보면 절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5일만 하면 끝이 나겠지 했던 봉사는 열흘이 지나도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이렇게 갇혀 있는데도 쓰레기는 매일매일 한 보따리씩 나오는 거 보면 다들 아직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거 같다. 내가 봉사 한단 얘기를 전해 들은 지인들이 너무 과분한 엄지 척을 보내주셨는데,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그 엄지 다시 접으시라고 밖에 못하겠다. 302호가 시킨 우유가 도착했단다. 이만 쓰고 가봐야겠다.


모두들 무탈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2년 4월 12일

 

반장엄마(erinj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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