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를 가르치는 국제무역 전공 태권도 강사. 이 다소 생뚱맞은 조합의 수식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상해한국문화원에서 태권도 강사로 일하고 있는 이선인 씨. 상해재경대학교 입학과 함께 상해생활을 시작한 이선인 씨는 태권도 외에도 캘리그라피와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국 문화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상하이에서 중국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태권도를 활용한 대외활동을 많이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해온 일이 쌓이다 보니 본과 3학년 때, 한국문화원에서 먼저 여성 강사를 찾고 있다며 연락이 왔다. 한국 문화원 태권도 강좌의 수강생 7~80%가 여성인지라 그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태권도를 통해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남들은 입시 전쟁 문턱에 설 고등학교 2학년 때 4단을 따두었다. 당연히 흔쾌하게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은 고등학교 방과후 활동 등의 외부 태권도 수업, 캘리그라피 수업, 한국어 수업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알리겠다는 계획을 꽤 오래 전에 세운 것 같다.
그렇다. 때문에 문화원에서 수업을 통해 만나는 인연들이 너무 소중하다. 항상 첫 수업에서는 새로운 위챗 단체 채팅방을 만든다. 위챗 친구만 800명이 넘는데 그 중 500명 이상이 같이 수업 했던 중국인들이다. 수업이 끝나도 한국이나 한국어에 대해서 궁금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하고 실제로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내가 한국의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란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은 문화원에서 해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인 대상으로 태권도를 가르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텐데.
당연하다. 수강생들과 나이가 비슷하다보니 친구처럼 잡담을 나누며 친해지려고 애쓴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하면 진지하게 임하고자 하는데 상하관계 하에 이루어지는 지도방식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는 수강생들이 드물지 않다. 때문에 엄한 분위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중국어로 가르치는 것도 난관이었다. ‘어깨를 펴세요’, ‘발을 바로 하세요’ 같은 말은 그때까지 배운 적이 없어서 첫 수업에는 바디랭귀지로 가르쳤다. 첫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는 아직까지 미안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나 수강생이 있는지
다운증후군과 지체장애가 있는 수강생들과 함께했던 수업이 떠오른다. 총 2개 교시였는데 첫 시간에는 정말 힘들었다. 수강생들을 통제조차 할 수 없었다. 무언가 가르칠 수 없는 상황에서 꾸역꾸역 가르쳐봤지만 이도저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아, 이들에게는 도복을 입어보고 태권도를 접해보는 것 자체가 경험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시간에는 나도 도복을 벗었다. 도복 입는 걸 보여주고 입혀가면서 수업을 끝내고 나니 그들이 나에게 ‘老师’라고 부르며 하이파이브를 하더라.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 받았다.
태권도를 단순히 일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그렇다.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나름대로 한국을 알리고자 했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태권도가 수단이 된 셈이다. 어린 시절 취미로 시작한 운동이지만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했다. 나를 만든 운동이자 외로운 타지 생활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이유였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연장선상을 꿈꾼다.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 청년들을 끌어당겨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한국을 알리고 싶다. 한국 청년들이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끈끈하게 뭉쳤으면 좋겠다. 태권도가 테마가 아니라도 좋다. 국가도 상관 없다. 좋은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
박예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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