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박물관에서 韩中 교류 흔적 찾기
박물관을 탐방하고 감상하는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얼마나 중국의 역사와 유산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아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 리터러시(literacy)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관람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넘어, 전시된 유물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 박물관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중국 역사문화와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칼럼에서는 화동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며 박물관 문해력을 키워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8푸단(复旦)대학교박물관: 새 학기의 설렘을 가득담은 봄맞이 캠퍼스 투어
방학은 우리에게 쉼에 대한 기대와 함께 다가올 새 학기에 대한 설렘을 선사한다. 마치 봄을 앞둔 나무가 살며시 새싹을 틔우듯,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학생들과 교환학생으로 상하이를, 푸단대를 찾은 이들의 기대감이 가득하다. 푸단대학교는 중국을 대표하는 명문대로, 그 이름에는 깊은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푸단(复旦)’이라는 명칭은 중국 고대 <상서대전(尙書大傳)>에서 유래한 구절로, 해와 달이 매일 떠오르듯 학문과 지식도 끊임없이 계승되고 발전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매일 만나는 새로운 태양처럼 학문적 열정이 자라나는 푸단대 캠퍼스로 떠나보자.
[사진=복원된 옛 푸단대 교문]
학문과 실무를 겸비한 인재양성소, 문물과박물관학과
푸단대학교 박물관은 문물과박물관학과 건물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학문과 실무를 연결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기능한다. 문물과박물관학과는 고궁박물원 및 베이징대학교와 협력하여 다수의 발굴조사를 공동 진행하고 있으며, 학생들을 현장에 직접 파견하여 실무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최신 발굴 동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으며, 전시 기획 및 박물관 운영 관련 수업을 통해 전문 큐레이터를 양성하고 있다. 이러한 인재들은 중국 전역의 박물관으로 배출되며, 푸단대학교는 박물관학과 전시 기획 분야에서 중요한 교육 기관으로 자리 하고 있다.
[사진=푸단대 박물관 전경]
1992년 개관한 푸단대 박물관은 1층의 전시관과 강연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전시관에는 20여 점의 주요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바로 옆 강연장은 학생들의 학습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2층은 특별전시 공간으로, 특별전이 열릴 때에만 개방된다. 특히 매년 봄, 학부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는 졸업 전시가 개최되며, 학생들의 창의적인 전시 기법과 문물 해석이 조화를 이루는 실험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학생들이 직접 문물을 연구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장이기도 하다.
박물관 속 숨은 동물찾기
푸단대에서 10년 넘게 유학생활을 하며, 일주일에도 여러 번 박물관을 찾았다. 수업과 강연이 자주 열리는 공간이었기에 자연스레 발길이 닿았고, 그 안에서 나만의 애착 소장품들도 생겨났다. 부엉이, 고양이, 도마뱀—이 세 점의 유물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외로운 나의 유학생활을 달래 주었다.
부엉이 형태의 병은 한나라 때 제작된 청동제품으로, 밤을 밝히는 부엉이의 신성한 속성을 반영한 작품이다. 한나라 시기에 중국인들은 사후세계와 우주에 대한 인식을 체계적으로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이 병에는 저승으로 떠난 이들이 보호받기를 바라는 고대인들의 따뜻한 염원이 담겨 있다.
당삼채로 장식된 인물도용의 복부에는 살포시 앉겨 있는 고양이가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다. 도용은 본래 죽은 이와 함께 매장되던 순장의식을 대체하기 위해 제작된 물품으로, 한나라 때부터 이러한 풍습이 정착되면서 생매장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당나라에 이르러서는 당삼채 기법이 도입되며 더욱 다채로운 색감과 장식성이 강조된 도제 인형들이 등장했고, 푸단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이 작품 또한 비단 옷 곳곳에 연꽃 무늬가 장식되어 있어 그 시대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고양이는 본래 곡식 저장을 위한 창고에서 쥐를 막기 위해 길러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한 기능적 역할을 넘어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당삼채 인물도용에 묘사된 고양이 역시 이러한 변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푸단대학교박물관 소장 도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적어도 당나라 시기부터 고양이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애완동물로서도 사랑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북송 시대에 들어서면서 고양이는 예술 작품에서도 더욱 자주 등장하게 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소장된 북송시기 역원길의 <길후묘도(吉猴貓圖)>이다. 이 작품에서는 고양이의 생기 넘치는 애교와 유희적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고양이가 단순한 실용 동물이 아닌 감성적 교감을 나누는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사진=타이베이고궁박물원 소장 <길후묘도(吉猴貓圖)> 세부]
마지막으로 소개할 애착 소장품은 명대 말기의 작품인 ‘마늘병’이다. 병의 끝부분이 마늘처럼 봉긋하게 솟아 있어 이러한 별칭이 붙었으며, 형태를 보는 순간 그 유래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가느다란 병의 목에는 도마뱀이 장식되어 있어 이 작품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도마뱀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기운을 상징하며, 힘찬 생명력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300년을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그 형태를 유지해온 이 병은, 소룡(小龍)의 해를 맞아 더욱 많은 방문객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도마뱀의 강인한 기백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푸단대박물관 소장 마늘병]
푸단대학교에서 엿보는 중국의 근대 교육이념
푸단대학교를 찾았다면 박물관뿐만 아니라 중국 근대 교육사의 흐름을 담고 있는 주요 건물들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푸단대학교 박물관 바로 옆에 자리한 상휘당(相辉堂)은 근현대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이 건물의 이름은 푸단대학교의 설립자인 마상백(马相伯)과 이등휘(李登辉)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지어졌으며, 그들의 교육 철학을 기리기 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마상보(马相伯)는 청나라 말기와 근대 중국을 대표하는 교육자로, 서양식 교육제도를 중국에 도입한 개혁가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가톨릭 자금으로 진단학교(震旦學校)를 설립했으나, 외부 자금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교육기관을 꿈꾸며 푸단공학(復旦公學)을 세웠다. 특히 그는 상하이 지역 상인들로부터 직접 자금 지원을 받아 학교를 운영하였으며, 이는 베이징대학교나 칭화대학교가 외부 세력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것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독립적 재정 기반은 푸단대학교가 학문적 자율성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며, 이후 중국 근대 교육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절문(切問)의 미학
상휘당의 ‘휘’는 푸단대학교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등휘 교장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는 교훈을 통해 푸단대학교의 학문적 태도를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푸단대학교의 교훈은 논어의 구절 중 하나인 ‘박학이독지(博學而篤志),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로, 이는 ‘넓게 배우고 자신의 뜻을 굳게 지니며,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늘 사색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푸단대 교훈]
특히, 석박사 과정 동안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절문(切問)’이라는 개념이었다. 이는 핵심적인 학문적 문제에 직설적으로 질문하며 깊이 탐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연구자가 자기주도적으로 지식을 확장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자세이기도 하다. 유학생으로서 중국어로 공부하며, 방대한 학문의 바다에서 나만의 연구 문제를 찾아 깊이 파고들라는 교수님들의 조언을 받을 때면 사실은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 들곤 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깊이 파고들라’는 학술적 모토를 강조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당시에는 답답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지속적으로 궁금해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다 보면, 어느새 절문의 미학을 깨닫는 날이 오지 않을까?
푸단대학교 탐방을 마치며
겨울방학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내적 성장을 이루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푸단대학교는 역사와 학문의 깊이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캠퍼스 곳곳에 학문적 전통과 자부심이 스며 있다. 박물관에 숨겨진 동물 조각들과 중국 근대 교육이념이 담긴 푸단대 캠퍼스에서 지식과 사색이 공존하는 청춘의 캠퍼스를 함께 거닐어 보자.
•주소: 上海市杨浦区邯郸路220号
•시간: 9:00-16:30, 점심시간(11:30-1:30), 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