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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리터러시 ⑦] 난징 성벽박물관, 벽돌 한 장에 담긴 600년의 시간

[2025-03-11, 17:49:43] 상하이저널
중국 박물관에서 韩中 교류 흔적 찾기

박물관을 탐방하고 감상하는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얼마나 중국의 역사와 유산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아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 리터러시(literacy)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관람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넘어, 전시된 유물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 박물관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중국 역사문화와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칼럼에서는 화동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며 박물관 문해력을 키워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7 난징 성벽박물관(城墙博物馆): 벽돌 한 장에 담긴 600년의 시간

2025년 1월 15일, 한국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탄핵된 윤 대통령이 관저에서 철벽수비를 하며 공권력에 맞섰지만, 결국 경찰이 전후방을 포위하고 관저 내로 진입해 체포에 성공했다. 장애물을 넘어 진입하는 모습은 마치 고대의 공성전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방어가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현대사회에서는 황제권력이라는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세시대 황제의 요새는 어땠을까? 이 주제에서 명나라를 건립한 첫 황제,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설계한 난징성(南京城)을 빼놓을 수 없다. 주원장은 웅장한 방어 체계를 자랑하는 성벽을 건설하며 난징을 명나라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성벽은 스스로 성을 버리고 북경으로 떠난 영락(永樂) 황제의 결정으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실패한 역사도 기억하고 보존할 가치는 있다. 난징시의 보호 노력 덕분에, 오늘날 난징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성벽을 지나치는 도로에서 한 번쯤 그 위용을 마주했을 것이다. 한양도성길을 완주하며 느꼈던 감동을 떠올리던 나 역시 언젠가 난징 성벽에 올라보리라 마음먹었고, 드디어 그 순간을 맞이했다.
 
[사진=난징 성벽박물관 전경]

난징 성벽의 역사, 박물관으로 기억하다

난징 성벽은 원나라 말기인 1366년에 공사를 시작해 27년 만에 완공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개축을 거치며 13개의 성문을 가진 방어 시설로 완성되었고, 길이는 약 33~35km에 달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도 약 25km로, 여전히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난징 성벽은 북경의 자금성과 비교해도 훨씬 크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벽 중 하나로 꼽히지만, 그 명성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난징 사람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 성벽박물관을 방문하고 직접 성에 올라본다면 난징성의 진가를 느끼며 새로운 인상을 받을 것이다.

이 성의 가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난징 성벽박물관이다. 2021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2000년 난징 성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후, 이를 보호하고 전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박물관은 난징성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전시와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사진=난징성 내성과 성문 안내도]

벽돌 한 장 한 장에 담긴 사람들

난징성을 만드는 데 사용된 재료는 돌과 부드러운 흙이었다. 흙을 발로 밟아 다진 뒤 네모난 틀에 찍어 가마에서 구운 벽돌이 성벽의 기본 재료였다. 성벽박물관에서는 벽돌 제작 과정을 미니어처로 쉽게 설명해 관람객들이 이해하기 쉬웠다.

완성된 벽돌이 전시된 공간에 들어서면 마치 미술품 전시회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시된 벽돌 하나하나에는 제작 지역과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공납된 벽돌에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공예품처럼 정교하게 조각된 벽돌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며, 당대의 기술력과 관리 체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벽돌을 찍는 과정]
 
[사진=난징성 성벽에 사용되었던 벽돌]

회화로 남은 난징성의 하루

하늘의 나라, 천조(天朝)로 불리던 난징성은 명나라의 위엄과 문화적 정수를 보여주는 중심지였다. 대보은사(大報恩寺)를 비롯한 주요 건축물과 성문들은 문화 중심지 명나라 도성의 상징적인 요소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송조천객귀국시장도(送朝天客歸國詩章圖)>라는 회화는 이러한 외국 사신들의 난징성 방문을 생생히 담아낸 작품이다. 회화 속 좌측에는 난징성을 떠나는 사신들과 그들을 배웅하는 명나라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우측에는 대보은사탑과 난징성의 주요 성문이 그려져 있다. 사신들의 국적에 대해서는 조선 사신인지 일본 사신인지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난징성의 공간 구조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연구 자료로 평가된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송조천객귀국사장도>]

난징성에서 시작된 새로운 왕성의 꿈

명나라 초기, 조선 사신들은 주로 해로를 통해 난징에 방문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도전(鄭道傳), 정몽주(鄭夢周), 권근(權近)이 있다. 정몽주는 <포은집(圃隱集)>에 난징 방문의 경험과 감상을 시로 남겼으며, 권근 역시 용강(龍江)에서 머무르며 난징성과 명나라 문물에 대한 느낀 바를 <양촌집(陽村集)>에 남겼다. 

특히 정도전에게 난징성의 웅장함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새로운 왕조의 이상을 꿈꾸게 하는 공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난징성을 세 차례나 방문하며, 한양도성 설계에 그 구조와 방어 체계를 적극 반영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정도전이 기획한 육조 거리는 난징성의 도시 구조와 유사하게 설계되었다. 경복궁 앞 중앙에 행정 관청들이 좌우로 배치된 형태는 난징성에서 영감을 받은 배치로, 조선 왕조의 통치 철학과 행정 체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과였다. 청나라의 자금성 또한 명나라의 성벽 구조를 동일하게 따른 것을 보면, 난징성은 당대 성벽 건설의 정답지 같은 사례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사진=성벽의 건설 과정]

명나라와 조선, 기와로 이어진 권위의 상징

박물관 곳곳에 전시된 황색 기와와 와당은 당대 최고의 권위를 상징한다. 황색 유약이 칠해진 이 기와들은 궁궐이나 능침과 같은 건축물에만 사용될 수 있었다. 특히 운룡문(雲龍紋) 기와는 명나라 황실의 권위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다섯 개의 발톱이 새겨진 오조룡(五爪龍)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는 엄격한 계급 질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예다.
 
[사진=난징 성벽박물관 소장 황유와당]

조선에서도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 운룡문 기와가 사용되었지만, 조선의 운룡문 기와는 청색 유약으로 칠해졌다. 이는 색상에 따라 권력과 위계 질서를 명확히 구분했던 당시의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황색 기와는 최고 권위를 상징하며 궁궐과 황릉에만 사용되었고, 청색과 녹색 기와는 친왕과 일반 관청 건물에 사용되었다. 조선은 청기와를 통해 친왕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운룡문 청기와 와당]

박물관을 나서며

박물관에서 난징 성벽에 담긴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면, 이제 실제 성벽 위에 올라볼 차례다. 박물관 옆에 위치한 ‘중화문(中華門)’은 난징성의 정남향에 위치한 문으로, 방문객들이 성벽 위를 직접 걸으며 그 규모와 역사적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잘 정비되어 있다.
 
[사진=중화문 전경]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600년 전 완공 당시의 웅장함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 서면 하늘의 나라를 꿈꾸었던 태조 주원장의 포부와, 한양도성의 구상을 다졌던 정도전의 열정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벽돌 한 장 한 장이 쌓여 거대한 성벽이 된 것처럼, 우리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덧대어지고 있다. 난징 성벽을 오르며 태조 주원장의 포부와 정도전의 열정을 되새기는 일은,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과 같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로에 선 오늘날, 유서 깊은 성벽 위를 걸으며 우리가 남길 발자취를 되새길 이들에게 난징성 방문을 권한다.

•주소: 江苏省南京市玄武区玄武门路22号
•시간: 9:00-17:00, 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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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푸단대에서 고고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방문학자를 지냈으며, 한국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회, 유럽고고학회, 케임브리지-바로셀로나자치대 학회 등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졸업 후 푸단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한중 도자교류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gowoon_seong@fudan.edu.cn
gowoon_seong@fudan.edu.cn    [성고운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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