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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의 ‘상하이 주재원’]대륙의 여유, 중국인의 깊이

[2024-08-12, 18:14:56] 상하이저널
얼마 전 한국에 계신 엄마가 전화로, “어젠 아빠가 식탁에 앉아서 너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시더라. 전화 한 통 해 드려라”라고 말씀하셨다. 마침 우리 집에 와 계셨던 시어머니께 이 내용을 말씀드리자, “그래서 가련천하부모심(可憐天下父母心,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은 가련하다)이란 말이 있다”고 하셨다. 찾아보니 서태후가 어머니 회갑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신하를 통해 많은 선물을 보내며 친필로 써서 함께 전한 글이라고 한다. 같은 제목의 드라마와 노래도 있다는 걸 봐선, 중국인들이 꽤 자주 쓰는 표현인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최고 39°C의 날씨에 운동을 마치고 귀가한 필자를 보며, 마침 집에 와 계시던 시어머니께서, “오늘 공을 치고 와서 기진맥진(精疲力尽, 정신적•육체적으로 극도로 피곤)하지?“라고 하셨다. ‘바이두’에 의하면, 精疲力尽은 북송의 충신이었던 이강(李纲)이, 진이 빠질 때까지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강렬한 애국심을 표현한 문구라 한다. 

내친 김에 어머님께 평소 자주 쓰시는 성어를 몇 개 더 알려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수십 개의 성어를 줄줄 쏟아내셨다. 年少不努力,老大徒伤悲(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 슬프다), 经历风雨,方见彩虹(비바람을 겪어야 무지개를 볼 수 있다), 世事无常,珍惜当下(세상일은 덧없으니, 눈앞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등등….

"星星之火,可以燎原(별의 불씨가 들판을 태울 수 있다)” 고대 중국의 고전에 나오는 이 성어는 중국 현대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마오쩌둥이 이 문장으로, 공산당 혁명의 작은 불씨가 넓게 퍼져 큰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중화권 대스타인 성룡(成龙)과 주걸륜(周杰伦)도 각각, “台上一分钟,台下十年功(무대 위 1분을 위해 무대 아래 10년 노력이 필요하다)", “滴水穿石(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라는 말로, 성공을 위한 노력과 인내의 중요성을 설명하곤 한단다. 

중국인들이 이렇게 성어를 적재적소에 인용할 수 있는 이유를 챗GPT에 물어봤더니, 중국의 학교 교육 시스템에서 고사성어를 중요 교육 내용으로 채택하고 있고, 성어가 고전문학, 역사서, 철학서, 그리고 일상 대화 등 중국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고, TV 드라마, 영화, 서적, 신문 등 미디어에서도 성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성어를 잘 사용하면 교양 있고 지식이 풍부하다는 사회적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란다. 

쫓기듯 조급하게 사는 필자에겐, 중국인의 ‘만만디’ 정신이 너무 쿨해 보였다. 그간 만난 많은 중국인들이 이렇게 눈앞의 이익보단 장기적 가치를 ‘맹신’하는 듯한 여유를 부려 뭔가 깊이 ‘있어 보이는’ 것도, 수천 년 그들 삶의 터전인 거대한 대륙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옛 성현들의 지혜가 함축된 고사성어를 늘 접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 건 이미 오래되었다. 

‘오십에 읽는 논어’, ‘노자의 인생강의’, ‘강신주의 장자 수업’, ‘명리, 나를 지키는 무기’ 등 중국 철학 서적들이 최근 부쩍 우리나라 베스트셀러 랭킹에 오르고 있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일부러 책을 사서 보거나 강의로 듣는 이 내용들을, 중국인들은 어려서부터 달달 외우고 삶의 일부로 체득하면서 살아간다. 국어(语文), 역사, 도덕 등 과목에서 문구 해석과 암기, 토론과 발표, 고전 필사와 서예, 인문학 현장 체험 학습 등을 통해 교육이 이루어진다. 필자의 눈엔 어려서부터 성현들의 깨달음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럽기까지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 학생들에게 성어와 고시(古詩) 외우기는 古文 아닌 拷問이라고 한다!

무협 최초의 여성 중국 지부장. 미주팀에서 미국 관련 업무를 하다가, 2007년 중국 연수를 신청, 처음으로 중국땅을 밞았다. 이후 상하이엑스포 한국기업연합관, 베이징지부, 중국실, B2B·B2C 지원실 근무 및 신설된 해외마케팅실 실장으로 3년간 온·오프라인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주말마다 대학에서 전자상거래, 마케팅, 유통, 스타트업 등을 가르쳤다. 이화여대 영문학 학사, 중국사회과학원 경영학 박사. 저서로 ‘박람회 경제학’이 있다.
cecilia@kita.net    [신선영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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