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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웅들, 독재자로 추락

[2022-03-18, 01:18:35] 상하이저널
"폭주하는 지도자 견제는 국민의 임무"

대한민국을 향후 5년간 이끌어갈 대통령이 3월 9일 선출됐다. 말이 필요없는 요직 중의 요직, 정치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다. 그러나 큰 힘에는 반드시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은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제대로 숙지되지 않는 격언이다. 고결하고 순수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도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갖게 되면 반드시 타락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한때 영웅으로 추앙받았더라도 권력을 잡으며 나라를 몰락의 길로 몰아간 독재자들이 지역과 시기를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어줄 영웅으로 시작해 독재자로 죽은 인물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프랑스 혁명의 핵심 주동자 '로베스피에르'


프랑스 혁명의 핵심 주동자 '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의 사례는 유명하다. 그는 18세기 프랑스를 좀먹던 무능하고 부패한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 평등, 우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에 기반한 새로운 정부를 세우기 위해 시민 혁명을 일으켰다. 그를 비롯한 공화파 정치인들은 루소와 로크 등이 주창한 계몽주의적 사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주권은 전적으로 국민에게 있으며 통치자는 이 권력을 대리하여 행사할 뿐’이라는 인민주권론으로 대표되는 혁명의 사상적 기반은 현대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왕정을 폐지하고 정부수반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로베스피에르는 타락할 수 없는 자(L'Incorruptible)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청렴했다. 언제나 말끔하지만 검소한 옷차림을 하고 다녔으며, 불필요한 사치는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적하기는커녕 셋방에서 거주하며 집무실로 출퇴근했고 여성 편력도 전무했다. 그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동지 조르주 당통이 낭비벽과 여성 편력으로 비판받는 점을 생각해 보면 로베스피에르의 도덕성은 확실히 눈여겨볼만 하다.

하지만 이런 청렴함 뒤에는 독선적인 면모도 숨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수호하기 위해 반혁명분자로 의심되는 모든 인물을 잡아 처형했으며, ‘민중의 적, 그리고 자유의 적을 공포로 다스린다’는 명목 아래 그 유명한 공포정치(la Terreur)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그가 1년 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위시되는 프랑스 민중의 저항 끝에 몰락했을 무렵, 프랑스 전역에서 단두대로 보내진 사람의 수는 만 육천여 명에 달했다. 결국 그 자신도 단두대에서 처형된 아이러니한 인물. 

20세기 후반부터 그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려는 기조가 나타난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1793년부터 1794년까지 행한 공포 정치는 옹호할 여지가 굉장히 적다.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는 그의 행적이 굉장히 자가당착적이며, 후일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이어지는 전체주의의 계보에 속한다고 비판했다. 분명 부패한 왕정을 무찌른 혁명가이자 영웅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프랑스를 혼란에 빠뜨린 독재자가 된 로베스피에르가 첫 번째 반면교사로 선정되었다. 

독립운동가에서 군부 독재자로 '네 윈'


'네 윈'은 미얀마의 국부 아웅 산의 동지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군부 독재자이다. 미얀마가 외세(초기에는 영국, 이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을 무렵, 네 윈은 아웅 산과 함께 독립운동을 이끄는 30인의 동지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하이난에서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은 후, 국내 교란 작업을 주 임무로 하는 레지스탕스를 조직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버마 독립운동의 핵심적 인물로 인정받았다.

아웅 산의 사망과 독립 이후에도 그는 군사 전문가로써 국방장관 등의 요직을 맡는다. 하지만 같은 독립운동가 동지였던 우 누와 대립 구도를 세웠고, 1960년 우 누가 총선거에서 승리해 집권했지만 고작 2년 만에 네 윈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하고 스스로 총리에 올랐다. 독재자 네 윈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정권을 획득한 네 윈은 국호를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바꾸고 사회주의 군사 독재 체제를 확립했다. 네 윈은 반외세쇄국 정책을 내세우며 버마민족끼리 잘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정책은 미얀마를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무리한 고립주의 정책을 고집한 결과 나라에 돈과 자원이 부족해졌고, 수요를 공급이 감당하지 못해 암시장이 성행하게 되었다. 

살기 어려워지자 네 윈의 사퇴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러한 요구의 결과물이 8888항쟁으로, 네 윈과 군부는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참살, 시위를 진압하려 애썼다. 이때 총에 맞아 죽은 시민들만 3000명으로, 이때의 일로 네 윈은 국제사회의 날선 비판을 받게 된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네 윈은 당 의장직에서 사임하게 되었으나, 그는 그 이후에도 권력의 뒤편에서 실세로 군림한다. 무엇보다 그의 사임 이후에도 군부는 권력을 놓지 않고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 탄압했고 8888항쟁은 실패로 끝난다.

그의 활약으로 군부는 막대한 권력을 획득, 반세기 동안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며 폭주하였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미얀마는 군부와 시민군의 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웅 산의 동지이자 미얀마의 독립 영웅으로 끝났다면 훨씬 아름다웠을 인물. 

짐바브웨의 국부로 불렸던 '로버트 무가베'


젊은 시절의 '로버트 무가베'만큼은 짐바브웨의 국부라 불려도 손색없는 업적을 달성했다. 학창시절부터 흑인 민족주의 운동에 활발히 참여, 로디지아 백인 정권에 통치되던 짐바브웨를 해방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그는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연합의 지도자로써 반식민주의 활동을 이끌었고 독립 세력의 또다른 구심점 카난 바나나와 함께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참혹한 내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백인 정권은 결국 1979년 항복했으며 짐바브웨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리의 자리에 오른 무가베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1982년 쿠데타를 일으켜 바나나를 축출하고 대통령에 자리에 오른 무가베는 흑인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인종차별, 괴이한 경제 정책,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 행각 등으로 나라를 나락에 빠뜨리게 된다. 비판을 수용치 않는 그의 통치 방식은 자정 작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2017년 군부 쿠데타로 강제 퇴임할 때까지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정적 암살, 반정부 시위대 학살, 정치범 고문, 야당 및 언론 탄압, 강제수용소 운영 등 독재자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폭정을 보여주었다. 

하이퍼인플레이션 하면 떠오르는 국가는 짐바브웨이다. 2008년 무가베의 경제 실책으로 짐바브웨는 그 해 4분기에만 7.3×1022%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했고, 두말할 것도 없이 국가 경제는 완전히 붕괴했다. 국민의 삶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본인의 엽기적인 사치 행각은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비판받을 만하다. 무가베는 한화 290억짜리 별장을 신축하고 생일 파티 한 번에 10억 원 이상을 사용하는 등, 국민을 위해 사용했어야 하는 재정을 자신의 허영심을 위해 낭비했다. 그는 생일 케이크의 무게를 자신의 나이에 맞춰 제작하도록 주문했는데, 이런 아무래도 좋을 사항조차 세심하게 신경쓰면서 정작 국가의 실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외에도 짐바브웨 내 백인들에 대한 비인도적 탄압, 성소수자 인권 저해, 본인 신격화 등 일일이 나열하기엔 여백이 부족할 정도의 패악을 저지른 바 있다. 독재자가 된 영웅은 많지만, 무가베의 경우처럼 극적으로 추락한 경우는 흔치 않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

개인이 아무리 유능하고 훌륭한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도 권력의 정점이란 빛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하물며 한때 독립 투사, 국부로 추앙받던 인물도 추락할 수 있는데 기성 정치인이 큰 권력을 잡게 되면 도덕적 몰락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독재자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에는 견제장치가 없는 시스템의 확립과 그것을 가능케 한 영웅 개인의 인기일 것이다. 나라의 영웅이 쌓아둔 업적을 바탕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의 평판 때문에서라도 마땅히 그 지도자를 비판하고 견제할 수단이 제때 형성되지 못한다. 특히 독립 직후 신생국에서 이런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런 신생국의 경우 독재자의 탄생을 막는 시스템이 반드시 조기에 갖춰져야 독재를 피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그런 경우는 전무했다. 굳이 찾아보자면 대통령제를 처음 시행한 미국 정도가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미국 역시 조지 워싱턴이라는 훌륭한 초대 대통령을 만난 운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퇴임할 때에도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측근들도 그가 더 집권하길 원했지만 워싱턴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은 덕에 군주와는 차별화되는 대통령의 정체성이 완성될 수 있었다. 만일 그가 마음을 달리 먹고 독재자가 되었다면 미국 역시 ‘미국 국왕’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국에는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시스템이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독재자가 탄생할 우려는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취약점은 아직 존재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승자 독식 제도 하에서, 승자가 지배하는 정부가 패자의 견제를 받지 못하고 앞에서 소개한 사례들처럼 부패하게 될 가능성은 아직 농후하다. 이런 경우, 제대로 된 민주사회에서 정부를 견제하는 임무를 맡는 것은 다름아닌 국민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용어는 유명하다. 특정 정치 집단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하여 그들의 실책과는 관계없이 표를 던지는 유권자층을 의미한다. 우리는 앞선 예시들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폭주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민의 비판을 듣지 않는 지도자는 반드시 실패한다. 같은 이치로, 국민의 비판을 받지 않는 지도자 역시 반드시 실패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정당 혹은 인물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콘크리트 지지층은 어찌 보면 가장 반민주적인 존재다.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대통령을 뽑고자 한다면, 우리가 선택한 후보가 ‘나라의 구세주’가 되어선 안 된다. 그 누구도 나라의 구세주가 될 수 없으며 구세주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견제받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우리는 한 손엔 표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언제나 돌을 던질 준비를 하자. 내가 뽑아준 정당은 물론 내가 뽑지 않은 정당이 무엇을 어떻게 왜 하고 있는지 유심히 지켜보자. 정치인들에게 우리들은 언제든 편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자. 어떤 식으로든 폭주하는 지도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학생기자 김보현(SAS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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