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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백옥란상 수상자 앰코 상하이 신성 부총재

[2015-09-19, 06:19:28]
 

지난 8일 열린 백옥란기념상(白玉兰纪念奖) 시상식에서 앰코 테크놀로지(이하 앰코) 상하이 신성 부총재가 수상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50명의 수상자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백옥란기념상은 상하이시에서 1989년 제정한 것으로 매년 상하이 경제, 사회, 대외교류 등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외국인을 선발해 시상해오고 있다. 신성 부총재는 본인의 수상을 두고 “상하이 상무위원회로부터 추천을 받았는데 왜 받은 건지는 사실 잘 모른다. 중국에서 오래 일하면서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서일까”라며 멋쩍게 웃었다. 실제로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을 중국에서 일에 매진하며 보내왔다.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는 어떻게 중국에 있는 미국 기업에서 부총재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주재원으로 내디딘 첫 발
현대전자 과장으로 근무하던 신성 부총재는 97년 7월 칭푸의 상하이 공장에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중국어는 접해본 적도 없었고 해외 관련 직무도 아니었기에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낯선 이국 땅에서 중국어를 공부해가며 적응해나가길 3개월, IMF 사태를 맞으면서 공장은 미국회사로 팔리고 말았다. 곧 미국인 개리 브래튼(Gary Breton)이 새로운 책임자로 오게 됐다. 새로운 사장은 부임하자마자 조직을 정리했다. 300여명의 기존 직원들의 데모가 일어났고, 신 부총재를 제외한 주재원 6명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영어와의 전쟁
그가 7명 중 홀로 미국인 사장 곁에 남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를 못해서’였다.
“회의가 영어로 진행됐는데 다들 끄덕이며 듣는 와중에 나만 못 알아 들었다. 사장실에 찾아가 ‘솔직히 회의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겠다. 읽을 수는 있으니 지시사항을 적어서 달라. 시간을 주면 곧 서면으로 하지 않도록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겠다’고 말했다. 사장은 솔직함에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그날부터 밤을 잊은 영어공부가 시작됐다. 신 부총재는 당시를 회상하며 “살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머지않아 그의 말대로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종이는 필요 없게 됐다.

뜻하지 않은 기회
신 부총재의 진실되고 성실한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공장을 떠나 이직한 브래튼 사장은 2001년 앰코의 아시아 총괄사장으로 상하이에 다시 돌아와 부총재 자리를 제안했다. 탄탄한 대기업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그로서는 선택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브래튼은 아내가 아파서 한국에 나가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공항으로 큰 꽃다발을 보내준 친절한 사장이었다.
“직원의 가족까지 배려하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이 사람이 진심으로 나를 위한다고 생각하니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브래튼 사장은 퇴직한 지금까지도 신 부총재의 은인이자 스승이자 지표가 돼주고 있다.

앰코의 지휘관 되다
앰코에 첫 출근한 지 어느새 15년. 수출입, 고객관리, 생산관리, 자재 기획, 시설․설비, 인사까지 어느 것 하나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다. 현재 660억원을 투자해 진행하고 있는 중국 공장 확장 공사 역시 신 부총재의 소관이다. 앰코는 세계 2위의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전문기업으로 아남반도체가 전신이다. 쉽게 말해 반도체를 작은 조각으로 떼어내 조립하는 일로 고가의 장비와 정밀한 기술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일이다. 그룹 매출은 연간 4조1000억원, 그 중에서 중국 매출은 6000억원에 달한다. 한국, 중국, 미국 외에도 필리핀, 타이완, 일본, 말레이시아에서 지사가 운영 중이다.

특별한 경영철학
앰코 상하이는 지금까지 경영악화로 인한 해고가 없었다. 물론 인건비 절감이 필요한 순간은 있었다. 그 때 신 부총재는 부서장들을 불러모아 “다같이 급여의 10%를 줄일 것인지 10%의 인력을 해고할 것인 것 논의해보라”고 했다. 돌아온 답변은 ‘업무실적이 낮은 사람들을 해고하자’였다. 괘씸한 마음이 든 신 부총재는 “좋다. 대신에 당신들 중 누군가가 그 10%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고, 무더기 해고 대신 전 직원이 고통을 분담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올해도 경기가 좋지 않지만 최대한 퇴사자의 대체 인력을 뽑지 않고 신규 채용을 보류하는 선에서 버티는 중이다.

직원들에 자유를 허하다
앰코에서는 말단 직원까지 모두의 컴퓨터에 인터넷이 연결돼 있고 근무시간에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단, 게임이나 드라마 시청과 같이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다가 적발됐을 땐 3차 경고에 의한 퇴사 조치가 가능하다. 이렇듯 강제로 규제하는 대신에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제도가 자연스레 정착돼 있다. 또한 현지 부서장들에게 의사결정의 권한을 줌으로써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일이 직접 챙겼지만 이제는 부서장들이 충분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부서장들만 잘 뽑아서 관리하면 그 밑의 직원들은 틀림 없이 훌륭하다.”

관리 비결은 ‘인내’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인사 관리’다. 그런데 5100명의 직원을 관리하는 그가 밝힌 노하우는 ‘잘 참는 것’이었다. 참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배려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더라도 일단 참고 상대방을 이해해보려 하는 것이다.
“권위로 위협하는 것은 상사가 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가장 무능력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것 외에도 같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같이 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곳에 가서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함께 해보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든 거절하든 또 다른 방법을 찾든’ 답이 나온다.”

신 부총재는 지금의 자리에 이른 것을 두고 “그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이 있었기에 찾아온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았던가. 오늘 맺은 결실과 영광은 지금까지의 그가 쌓아온 노력과 흘린 땀방울의 대가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김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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