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상하이에 왔던 97년에는 길에서 한국말을 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도중에 들려오던 우리말이 반가워서 달려가 “한국 분 이세요?”하며 아는 척을 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몇 명 되지 않는 한국 사람끼리 모이면 택시 안에서나 거리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우리말을 하곤 했다.
가끔은 우리를 차에 태우고 일부러 먼 거리를 돌고 있는 택시 기사가 우리의 도마에 올랐고, 더운 여름날 길에서 날씨보다 더 뜨거운 과감한 애정표현을 하는 한 쌍의 연인이 우리들 대화의 소재가 되곤 했었다.
듣고 있는 사람이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 가끔은 도가 지나치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앞에 두고 그 사람에 대한 말을 직접 하는것에 대한 비뚤어진 즐거움으로 철없이 킬킬 대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말과 행동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인지라 남의 흉을 보는 내 모습이 남들이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끔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며, 아차 싶어 ‘말조심해야지, 한국 가서 이러면 큰일이지’ 하며 자제를 했었는데…..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일어나기도 했다.
오랫만에 한국에 가서 택시를 타고, 거리를 멀게 돌아가는 택시 기사에게 아무 생각 없이 “이 놈이 또 돌고 있네!”라고 큰소리로 말해 버렸다는 어느 지인의 이야기는 금세 상하이에 퍼져 아무 생각 없던 한국 ‘아줌마’들의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었다.
이런 이야기가 어느새 정말 ‘옛날 이야기’ 가 되어 이젠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는 말할 것도 없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안에서도 한국어를 듣는게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덕분에 길에서 함부로 우리말로 남의 흉을 보는 못된 습관은 나도 모르게 고쳐졌다.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 들을거란 걱정 때문 일 것이다.
얼마 전 북경에서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는 ‘한국 타이타이(太太)’들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서로 자신들의 말을 못 알아듣겠지 하는 마음에 함부로 다른 편 사람들의 뒷담화를 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입에서 불쑥 튀어나간 말을 주워담을 수 없이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도가 지나쳐 서로 이성을 잃어 신문에 까지 오르내리는 부끄러운 일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지. 말을 할 때 조금만 신중을 기했더라면 이런 안타까운 일은 없었을텐데 말이다.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세상의 모든 병은 입을 통해 들어가고, 세상의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 <病从口入,祸从口出〉라는 성어를 배우고 무릎을 치며 동의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상대방이 나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던, 그렇지 않은 사람이던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내 입을 떠나기 전에 머리로 한번쯤 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듣는다고 가정을 하고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쁜 말인지 아닌지 말이다.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 내 옆에 있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내가 한 말이 돌고 돌아 당사자의 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도 잊지 말아야지.
넓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말 좁은 것이 세상이고, 상하이의 한인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좁으니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재앙’을 뱉어내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푸둥연두엄마(sjkwon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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