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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를 동에서 서로 횡단하여 걷기, 선보(禅步) 감상

[2021-09-23, 11:04:56] 상하이저널

상하이에서 살아온 지 25년, 처음으로 상하이의 중심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황포강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며 걸어 보았다. 1990년대 들어 푸동 지역을 개발하기 전에는 상하이 라고 하면 주로 황포강 서쪽을 말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 황포강에 가까운 서쪽 지역이 서방 열강의 침입으로 상하이 의 중심이 되었다. 황포 강변 서쪽을 와이탄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20세기 초까지 서방 열강들이 조계지로 삼고 활동하던 지역이다. 황포강을 건너 동쪽 지역은 농촌이었는데 90년대부터 개발되어 지금은 마천루가 들어선 금융가로 변신해 있다.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데리고 황포강의 동쪽 강변이나 서쪽 강변인 와이탄을 구경하기를 25년째, 한 번도 푸동에서 푸시까지 걸어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어제 푸동에서 푸시까지 상하이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걸었다. 푸동의 푸청루 원불교 상하이 교당에서 출발하여 약 16킬로미터 정도되는 거리를 걸어 홍췐루와 인팅루 한인촌까지 걸었다.

한 해 동안 성장해온 수목(水木)의 노고에 감사하고 농사의 결실을 축하하며 천지와 조상에게 감사드리는 중추절을 이틀 앞두고 원불교 상하이 교당에서 '상하이 한인 사회의 대참회 대해원 대상생을 위한 선보(禅步)'를 실시하였다. 상하이 교당의 교무님과 교도들과 또 다섯 명의 일반인을 합하여 우린 모두 열일곱 명이었다. 교당을 출발하여 황포강은 배로 건넜으며 프랑스 조계지를 동서로 가로질러 쉬자후이까지 걸었고, 그곳에서 다시 홍차오로 진입했다. 홍차오 지역에서는 큰 길의 배후에 있는 작은 길을 따라 걸으며 한인촌 목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 반에 출발하여 중간에 점심 식사를 하며 휴식을 했고, 길을 따라 걷다가 두 곳의 카페에 들러 쉬었다. 인팅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쉬었던 시간을 감안하면 걸은 시간은 6시간 정도도 되었나 보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프랑스 조계지를 걸으며, 다시 향장수와 꽈리수가 있는 홍차오 지역의 거리를 걷던 기분은 소풍같았다.

만약 이 길을 나 혼자 걸었다면 완주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말을 나눌 사람도 곁에 없고 중간에 지쳐서 카페를 찾아도 혼자서 커피를 마셔야 하는 침묵의 여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이 힘이 되었다. 중간에 피곤했을 수도 있었는데 동반하여 걸어준 교무님과 도반들 덕분에 피로를 모르고 마치 러너스 하이를 경험한 것처럼 발걸음은 걸을수록 가벼워졌다. 나에게는 새로운 기록이다. 사실 상하이에 살면서 푸동에서 푸시 한인촌까지 걸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젠 자랑삼아 말할 거리를 하나 장만한 셈이다.

다음에 한 번 더 걸어보고 싶다. 아니, 가급적 계절마다 한 번씩 걸어보고 싶다. 우선 늦가을 즈음 혼자서 혹은 딱 한 사람을 청하여 그와 단둘이서 푸동에서 푸시까지 조용한 걸음을 한 발씩 떼며 걸어보고 싶다. 그때는 코스의 마지막 목적지에 몇 시쯤 도착할 수 있을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조계지의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감상하고, 그 길의 역사를 더듬어 보며, 길에서 작고 예쁘장한 카페를 만나면 잠시 들러 커피도 마셔보고 싶다. 마음속에 소원을 간직하며 그 소원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며 걷는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어제 처음으로 걸어본 길, 상하이 한인 사회와 대한민국과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와 지구의 환경을 위해 기도문을 읽고 걸었던 길이었다. 다음 번엔 내 영혼을 위해 걸어보아야겠다. 내 삶을 위해서, 내가 과연 상하이에서 얼마나 더 오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내가 상하이에서 이룰 수 있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걸어보면 좋을 것 같다.

걷는다는 것이 다만 목적지까지 얼마나 빨리 가 닿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소원을 발로 쓰는 일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벗어나 일상을 정리해 보는 걸음이 되면 좋겠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시끄러운 생각들을 털어버리고 왜 사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정리해 보는 걸음, 그 걸음걸음에 남은 생(生)의 간절한 소원을 발로 길바닥에 쓰는 행위가 되는 행위 예술로서의 걷기가 되면 좋겠다. 발로 쓴 것이야 눈으로 볼 수 있는 문장이 아니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지워질 것이다. 다만 걸음과 사색의 흔적은 그 거리들의 허공 법계와 나의 기억에 그대로 찍혀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건강을 위해서 운동 삼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이젠 다시 이팔청춘 소년이었던 옛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사춘기 감상에 빠져 막연한 생각으로 걷기를 좋아했던 학생 시절의 내가 한 점 오염 없이 맑고 밝고 순수 했었다. 이제 나는 다시 사춘기로 들어서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누군가 나에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살다 보니 어느덧 육십 갑자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다시 시작하는 육십년, 많이 걸으며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끼자. 목적지에 빨리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생각하기 위해서 걷는 것, 어제 선보의 경험이 나의 삶을 선보를 닮아가는 걸음으로 만들어 주기를 소원해 본다.

박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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