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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이야기> "건망증 없으세요?"

[2007-02-03, 06:07:02] 상하이저널
해가 바뀌었으니 누구나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되었다. 스물아홉의 초조함도, 서른아홉의 우울증도 지나고 나니 이제는 별 감각 없이 그냥 숫자만 커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해가 다르게 달라지는 것은 기억력이 점점 없어진다는 것이다. 중국어 단어 하나 외우는 것도 갓 상해에 왔던 4년 전하고는 확연히 다르고, 누군가가 기억을 도와주면 술술 생각나던 것도 이제는 언뜻 지나간 일에 대해선 관심과 기억이 없다. 지난날의 총명함을 말해 무엇 하겠는가. 머릿결 나빠지는 것은 내가 사는 중국의 물을 탓해 보지만 기억력 나빠지는 것은 핑계가 없으니 그저 나이 탓만 하게 된다.

냉장고에서 핸드폰 나오면 치매의 초기라고 했던가? 아직 냉장고까지는 아니지만 외출 할라치면 핸드폰 안보여 꼭 집 전화로 내 번호 눌러보고 그 소리 나는 곳으로 추적한 경우가 여러 번이요, 그도 깜박 잊고 빈 가방만 들고 나온 경우도 허다하다. 하긴, 이웃집 아줌마는 우리 집에 와서 한참 있다가는 자기 가방에서 자꾸 무슨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하며 가방을 뒤지더니 "어머, 나 어떡해! 핸드폰 들고 나온다는 것이 아들 다마구찌(손바닥 반만한 장난감) 들고 나왔어" 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뒤집어 졌다.

남편이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중국 내 기러기 가족이 되었다. 매일 밤 전화를 하면서 우리는 하루의 가장 좋았던 일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서로를 웃게 하는 게 의무다. 오늘날 그 유명한 <아라비안나이트>가 다음 날이면 죽음을 당할 신부 세헤라자드가 다음 날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죽일 날을 미룬 왕에게 들려준 천 가지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소재가 궁해지면 인터넷도 뒤져보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수집하게 되는데 가만히 보면 건망증에 관한 이야기가 꽤 많다. 골프 치다가 타수 우기는 일은 비일비재요, 내 손에 공 들고 있으면서 캐디한테 내 공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거 하며, 함께 라운딩한 사람과 샤워장에서 만나면 오랜만이라고 악수 청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어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생애 최악의 일이 벌어졌다. 아들보다 먼저 저녁 수저를 놓은 나는 감기 기운이 있는 아들을 위해 약통을 뒤져서 종합감기약과 소염제 한 알을 손바닥에 들고 오다가 일하는 아줌마와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식탁에 앉자마자 무심결에 손바닥의 알약을 내 입에 털어 넣고는 물을 홀딱 마셔 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이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숨 넘어가게 웃던 남편이 말한다.
"그러게, 이제부터는 서로 타박하지 말고 도와가며 살자고. 내가 물건 어딨냐고 찾으면 좀 친절하게 찾아주고, 잊어버리는 일 있으면 같이 기억도 좀 해주고...."

나이 들수록 부부가 서로 의지하게 되는 것도 건망증에 대한 부분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 나 자신만이 옳다고 믿었던 젊은 날의 꼿꼿함에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을 배우는 거야. 거저먹는 나이가 어디 있겠는가 스스로 위로를 하지만 어쩐지 외국 땅에서 먹는 나이가 서글프기만 하다.

▷ 포동아줌마
(delpina@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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