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들이 한국에서 저장성 핑후(平湖)로 출장 왔다.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해서 상하이 집엔 들르지 않았다. 떠나기 하루 전에 들러 하룻밤 자고 서울로 간다고 한다. 감개무량하다. 내 아들이 이제 어엿한 사회 일원이 돼서 외화벌이 일꾼이 됐다는 사실이.
얼굴을 자주 보지 않아도 한 동안 연락이 두절돼도 나는 전혀 섭섭하지 않다. 대학 졸업, 군대 제대 후 점점 걱정이 줄었고,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제 아들 잘 못 키운 엄마는 아닌 것 같아 기뻤다. 첫 아이이고 아들이다 보니 키울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없었으면 어쩔 뻔! 이런 생각마저 든다.
학창 시절 아들과는 매일 게임과의 전쟁이었다. 집에 고속 인터넷도 일부러 깔지 않았다. 차라리 게이머가 돼라고 하루 종일 게임만 하게 한 적도 있었지만 정말 게임만 하는 아들을 보며 일주일도 못 넘기고 내가 먼저 포기했다. 나는 확신도 배짱도 게임에 대한 이해도 없는 보통 엄마였다. 고등학생 때는 집 근처 왕바(피시방)를 매일 출근해 마지못해 두시간씩 꼬박 게임을 하도록 허락했다. 속은 터졌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고 엇나갈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는 놀기 바빴고 그래도 적성에 맞았는지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국제통상을 전공해서 당연히 아빠 무역회사에서 일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갑자기 IT 회사에 취직하겠다고 졸업 후 6개월간 IT 직업교육을 받고 이력서를 20군데나 냈으나 면접에서 다 떨어졌다. 나는 관련 학과 나온 애들도 취직이 어렵다는데 전공도 안 한 네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냐며 실력을 탓했지만 아들은 자기가 희망 연봉을 너무 높게 써서 안 된거라고 한다. 진실을 누가 알겠냐마는 나는 그냥 그 말을 믿는다.
졸업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계속 집에만 있으면서 취업 준비만 하는 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러다 금방 서른 되고 마흔 될텐데…. 고학력 자녀들이 자기가 원하는 데만 고집하다 나이 들어 결국 취업을 포기한다는 뉴스가 남일 같지 않았다.
남편회사에서 아들은 방학 때마다 인턴으로 일했었고 남편도 아주 만족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업종 회사를 찾고 있는 아들을 보며 30살까지는 기다려 주겠다고 했다. “실컷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게 하지 뭐”라면서. 가끔 며칠 밤을 새워가며 컴퓨터 작업 알바를 하고 푼돈을 받는 아들을 보면서 노동력 착취라도 당한 것처럼 한심해했고 나에게 불평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들에게 우리회사에 나와 일해 달라고 부탁하기는 싫다고 했다. 두 남자 사이에서 내 마음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한달에 100여만원씩 아들에게 계속 용돈을 주고 있었다. 나는 학생 신분도 아니면서 아무 대가 없이 용돈을 계속 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과 얘기했다. 넌 지금 용돈을 받을 때가 아니라 월급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 네가 원하는 일은 꿈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찾되 일단 월급받는 일을 먼저 하라고, 생활비를 먼저 해결하라고 했다. 무조건 아침에 눈뜨면 아빠회사에 시간 맞춰 출근하고 퇴근만 하라고 했다. 30분 설득 끝에 그러기로 했다.
2년간 국제거래는 어떻게 진행되는 지 전반에 걸쳐 일을 하면서 흥미로워했다. 국내외 출장도 자주 다녔다. 최근엔 국내외 손님들과 상담하거나 접대할 때 아빠의 지식이나 유머 순발력에 감탄이 나온다고 극찬을 해서 나를 흐뭇하게 했다. 남편은 아들이 비즈니스는 대학과 실전에서 배워 문제없으나 경영 마인드가 좀 부족한 거 같다고 경영대학원 MBA를 권유해서 지금은 주경야독의 빡 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그 어느때보다 더욱 활력이 넘쳐보인다.
퇴근하고 별 약속 없으면 여전히 방콕해서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계속한다. 가끔 자기 블로그 조회수를 보여주고 누적조회수로 돈도 벌었다고 자랑하고 자기가 개발한 게임도 보여주곤 한다. 처음엔 나와 너무 다른 20대를 보내는 아들이 낯설었지만 현재 여느 20대들처럼 보여 안심이 되기도 한다. 늘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무거운 숙제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첫번째 숙제를 마친 거 같아 마음이 참 가벼워졌다.
걍걍쉴래(lkseo70@qq.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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