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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253] 너무나 많은 여름이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2024-09-14, 07:16:22] 상하이저널
김연수 | 레제 | 2023년 6월
김연수 | 레제 | 2023년 6월
날카롭고 자극적인 언어가 난무하는 요즘에 소설가 김연수의 신작 ‘너무나 많은 여름이’의 언어는 따스하고 다정하다. 특히, 방사능 오염수 방류로 전국의 횟집과 수산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피맺힌 절규를 공감할 수 있는 장조차 없는 지금, '이유 없는 다정함’으로 타인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더욱 소중하다. 

코로나로 우왕좌왕하는 사이 4차 혁명의 시대가 무르익어, 멀티 시대에 집중력이 사라지고 원초적 감각이 난무하는 시대라 한다. 문학계는? 

이제 장편을 읽는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단편 소설도 길어서, 짧은 소설(미니 픽션)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소설가 김연수는 새로운 소설 쓰기인 ‘짧은 소설들’을 통해 또 하나의 ‘아주 작은’ 세상에 대해 다정하게 들려준다. 
 
작가는 2021년 제주도 어느 서점에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인문학서를 읽는 독서 모임의 회원들’에게 낭독회를 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눈을 감는 분도 있었는데 그날만은 주무셔도 괜찮다는, ‘당근이나 배추 혹은 감귤…그들이 낮 동안 열심히 일해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밤의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내게 하는 것.’ 그런 낭독회에서 사람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쓴 소설이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됐다.’ ‘지친 얼굴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을 기대하는 얼굴들…’  

소설독자층의 저변이 넓어지며, 주변의 소시민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들을 담은 소설집이라 더욱 친근하다. 작가의 ‘다정한’ 마음은 소설 속의 소시민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나무, 새, 동물들에게도 따뜻하게 전달되고 있다. <나 혼자만 웃는 사람일 수는 없어서>에서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철거가 예정된 아파트 단지에 모여 ‘나무 이름 부르기’를 하려고 모인다.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준 뒤에는 이름을 붙였어.  내 생애 가장 빛났던 나무. 내 유년기의 나무. 우리들의 나무. 나의 신령님… 이름을 붙인 뒤에는 다 같이 나무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쳤어…”궁금이와 함께 웃는 나무”라고 이름을 외쳤어. 

아파트 철거 예정이라 이사 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 텐데, 철거 예정지 주민들은 사라져 갈 나무들 걱정으로 오히려 마음이 따스한 ‘행복한 사람’들이다. 

소설이 짧아지면서 독자들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소설가는 가려서 보이지 않는 삶들의 주인공을 찾아내어, 그들의 삶의 의미와 감사를 전달하는 일이 소설가의 일임을 작가는 강조한다. <젖지 않고 물에 들어 가는 법>에서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언급한다. 

광부들의 세계는 우리가 디디고 선 이 땅의 아래에 있습니다. 소설가란 이 두 세계를 넘나드는 존재입니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이 순간 가능성으로만 숨어 있던 비밀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마지막 이야기인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서는 일본에서 자란 엄마가 숫자를 이치, 니, 신, 시…로 가르쳐 주셨던 일, 네잎클로버를 잘 발견하셨던 젊은 엄마에 대한 추억을 생각한다. 임종의 자리에서도 엄마는 고통 속에 있지 않았다. 엄마는 평화 속에 있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알아보는 엄마에게 몇 번이고 사랑한다고, 나의 엄마여서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마무리할 수 있는 삶은, 한 편의 시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햇살로 남아, 그 따스한 온기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머무를 것 같다.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말이다.

김효순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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