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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에 사는 보통여자

[2024-08-10, 07:34:19] 상하이저널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유치원 학예회 무대 위, 한복을 곱게 갖춰 입고 양손에 미니 태극기를 든 채 곧 나올 음악을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 친구들과 함께 율동에 맞춰 춤을 추며 애국심에 심장이 터질듯하던 그 순간의 감정이 지금도 너무나 선명하다. 유치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나는 가끔 혼자 율동을 춰보며 그때 그 웅장했던 감정을 되새기곤 했는데, 뭘 안다고 세상 진지하던 7살의 나를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엄마는 내게 당시 한창 유행이던 위인전집을 사주셨다. 나는 오랫동안 매일 밤 위인전을 읽었는데, 그때마다 태극기를 들고 춤을 출 때와 비슷한 감정에 휩싸이며, 난 어떤 훌륭한 사람이 되어 책에 실릴지 상상하며 잠에 들곤 했다. 그렇다. 나는 모든 사람이 죽기 전 위인전에 나올 정도의 업적 하나쯤은 남기고 떠나는 줄 알았다.

근거 없는 낙관과 마음속 이상으로 버무려진 10대와 20대를 보내고, 확고히 뜻이 서는 나이라는 서른도 한참 지나온 지금. 나는 위인은커녕, 여전히 방향키를 잡는 게 서툴고 때론 두렵기까지 한 망망대해 위 호롱불 같은 인간이다. 아직도 무엇을 낚으러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헤매고 있는 초보 인간. 


그러니 어른이 된 오늘의 나는 훌륭함과는 한참 거리가 먼 보통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나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세속적 욕망을 잘 숨기고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 과거 한 대선 후보가 대중 유세 중 킬링워드로 삼았던 그 ‘보통 사람’이 된 나의 고민은 바로 이 평범함에서 시작된다. 

나도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고 외치고 싶은 욕구. 순간의 이미지가 아닌, 이야기가 있는 텍스트로 내 생각과 사는 모양을 표현해 보고 싶지만 너무도 평범한 내 이야기는 이 세상에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렇게 혼자만의 일기장만 두껍게 쌓여가던 무렵, 우연히 만난 상하이저널 허스토리 필진 모집 공고. 상하이에 사는 ‘그녀’로서라면 나도 뭔가 할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운이 좋게도 나는 이곳에서 처음 세상에 내 보통의 이야기를 건넬 기회를 얻었고, 최소 1명(편집장님)이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진짜 작가가 된 듯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1년동안 총 7번의 원고를 쓰고, 2명의 낯선 이로부터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나. 우와, 이렇게 황홀한 작가 체험이라니! 

최진석 교수는 ‘글이란, 몸속에만 머물기 버거운 영혼이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라 하였다. 나도 그동안 내 밖으로 뛰쳐나온 것들을 수줍게 주워 담으며 나의 세계가 조금 더 뚜렷해져 감을 느꼈다. 그리고 역시, 오늘의 나는 훌륭함, 세련됨, 화려함과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먼 평범함, 순진함, 투박함이 더 어울리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Raymond Savignac  

마지막 원고를 쓰며, 앞으로 평범한 내 보통의 삶이 단조로워 회색이 되려 하면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형형색색의 영혼이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나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면 차곡차곡 쌓아 나가야지. 그리고 무엇을 찾으러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해지는 순간, 초보딱지를 떼고 내가 살아온 모든 보통의 삶을 몽땅 쏟아 낚싯줄을 당겨야지! 

상상(sangsang.story@outl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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