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경력단절여성'. 그리 새롭지도 않은 단어이다. 특히나, 이곳 상하이로 이주해서 사는 한국 여성들의 대부분은 ‘경.단.녀’일 것이다. 나 또한 2009년 남편이 상하이 주재원으로 파견되기 전까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아이들이 만 3살, 만 1살이었으니 풀타임 보모 아주머니가 아이를 양육해주고 계셨고, 나의 월급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보모께 드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나의 직업을 유지하는데 가치를 뒀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프로젝트로 인해 버거운 시간도 있었지만, 내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었다. 상하관계의 태움이 있었지만 매달의 금융치료(월급)에 마음이 사르르 녹기도 했다. 과장 자리를 바라볼 즈음 “일신상의 이유”라는 사직 사유를 적어 제출한 사직서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쉽게 처리되어 버렸다. 입사를 위해서는 6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했으나, 퇴사 처리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시원섭섭한 마음도 잠시, 남편을 따라 아이들과 함께 들어온 상하이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업무 분담으로 가득 차 있던 나의 다이어리는 중국어 푸다오(辅导) 선생님 과외 횟수, 도우미 아주머니의 일한 시간, 타오바오 구입 물품 등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렇게 4년의 주재 기간이 끝날 무렵 한국에 들어가면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직업의 특성상 자격 유지를 위한 보수교육을 받지 않아 자격이 박탈된 상태였다. 결국 남편은 1년 반 만에 다시 상하이행을 택했고 경력 단절의 상태로 나는 다시 상하이 행 비행기를 탔다. 이제는 나 스스로를 경단녀라 부르지 않는다. 경력을 쌓은 시간보다 단절된 시간이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주변에는 남편의 주재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가며 회사로 복직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많다. 혹은,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니 사회로 나가 경제적인 보상을 받으며 일하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많다. 한국에서도 경단녀로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는 않은데, 해외인 이곳에서는 그 기회가 더욱 희박하다. 얼마 전에 방영을 마친 드라마 “닥터, 차정숙”이나 최근 방영 중인 “잔혹한 인턴”을 보며 경단녀가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 적응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일자리를 찾는 것도 어렵지만, 그 안에서 업무 감각을 다시 회복시켜 이전과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으로의 복귀는 멀었지만, 자의든 타의든 경력이 단절된 내가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먼저 한국에 들어간 선배님들은 방과 후 도우미, 공부방, 대(對)중국인서비스 등으로 일하고 계시기도 하니 아예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혹은, 나의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물론 사회에서의 경력은 단절되었지만,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경력은 상당히 쌓아져 있다. 이 경력이 활용될 수 있는 곳에서 경제적인 보상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나의 경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일 혹은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 그것도 아니면 여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일을 찾아 더욱 쓸모 있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고 또 되뇌어본다.
에리제를 위하여(khe30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