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은 언제 크나 했는데, 정말 생각보다 빨리 컸고, 나도 이제 중년에 접어들어 ‘라떼~’를 논하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 전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떠났다. 아이들은 언제 떠나도 떠날 손님이라고 항상 생각을 해왔고, 인생은 늘 혼자라는 나름의 개똥철학을 펼쳤던 터라 큰 아이와 헤어지는 것에 대해 큰 타격은 없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타격은커녕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조금 더 컸던 게 사실이다.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고, 이번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푸동 공항에서 큰 아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 머릿속은 온통 버리고 정리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40L짜리 오븐을 정리했다. “엄마, 나는 파리바게뜬 빵이 먹고 싶어요.” 아이들은 자주 이런 요청을 해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억척같이 빵을 구워냈다. 진작에 정리했어야 할 물품 1호 중에 1호가 오븐이었다.
그 다음 내 눈을 거스르게 했던 건 10인용 밥솥이었다. 이제 단출하게 두 식구 남았는데 10인용 밥솥은 가당치 않았다. 타오바오를 검색해 보니 1~2인용, 3~4인용 밥솥, 어쩜 디자인도 그렇게 이쁘게 나왔는지, 3일 동안 폭풍 검색 후에 나는 2인 가족에 걸맞은 3~4인용, 3L 짜리 밥솥을 구매했다. 내 솥이 생각보다 많이 작았지만, 이제 달랑 두 식구인데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새 밥솥에 밥을 하니 왠지 더 맛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였을까. 좀 작다고 생각된 밥솥이 정말 많이 작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10인용 밥솥으로는 이틀에 한 번 정도만 밥을 했었는데, 작아진 밥솥으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밥을 하고 있다. 쌀이 주는 속도도 큰 아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신랑이랑 떨어져 지내면서 제일 티가 났던 게 쌀이 주는 속도였는데, 이 번엔 왜 티가 안 나는 건지. 나는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 이상하게 쌀 주는 속도가 줄지 않고, 반찬도 평소처럼 없어진다 했더니, 남편은 점잖고 침착한 목소리로 돼 물었다.
“자기야, 아직도 모르겠어?”
정말 모르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소싯적에 비하면 나는 많은 운동과 인내심과 사람처럼 먹겠다는 의지로 먹는 양을 많이 줄였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인가!’
나이 들면 입맛도 줄어든다는데 나는 어쩜 이리 한 결 같은지. 스스로 메타인지가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아진 밥 솥 덕에 현타가 제대로 왔다.
‘그래 더 줄여보자. 이쁜 새 밥 솥! 내 너에게 부응하며 살아 보련다!’
반장엄마(erinj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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