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가인이 구름처럼 모여 수천 궁녀가 황제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궁 안에서 그 많은 미인들을 제치고(?) 오직 한 여인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일반 사람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국 역대 황제들 가운데서 한 여인만을 사랑한, 혹은 어쩔 수 없어서 한 여인만을 두어야 했던 황제들 가운데서 그 순위를 가린다면 그 첫번째는 단연 명효종과 장황후일 것이다.
-----명효종과 장황후
명효종과 장황후가 1위로 꼽힌 것은 일부일처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평생 황후 하나만을 사랑하고 후궁을 전혀 두지 않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지극한 사랑이라 할수 있다.
특히 당시에는 황실의 자손들이 많아야 했으나 명효종과 장황후 사이에는 아들 1명만을 두고 있었으니, 대신들은 하나같이 후궁을 둘 것을 요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효종은 눈을 감을 때까지 장황후 하나만을 사랑했으니, 그야말로 지고지순 극진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한 장황후의 말년은 쓸쓸하고 비참했다.
명효종이 사망 후 유일한 아들인 후조(后照)가 곧 즉위해서 황제(武宗)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중국 역사를 통틀어 괴짜황제로 유명한 주후조-정덕제다.
정덕제는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미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겼으며 엉뚱하고 엽기적인 행각은 이루다 헤아릴 수 없었다.
짧은 생을 마감하고 31세에 세상을 떴는데, 미녀들과 함께 호수에서 물놀이를 즐기다가 물에 빠진 것이 화근이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하직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후계자가 없어서 황위를 사촌인 주후총(朱厚骢)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었는데 이로써 명효종의 명맥이 그 아들 대에서 끊기고 만 것이다.
주후총이 황제의 위에 오른 후에도 장황후는 주후총의 생모인 장(蒋)씨를 대함에 있어서 예를 갖추지 않고 여전히 비를 대하듯 해 황제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 후 장황후의 동생들이 선후로 역모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장황후는 동생들의 목숨을 구하고자 머리를 풀어헤치고 낡고 초라한 옷을 입는 수모를 당해야 했으나 결국 황제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쓸쓸하게 궁에서 생을 마감했다. <다음호 계속>
▶ 박해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