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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에서 만난 아줌마(阿姨)

[2021-03-19, 10:20:02] 상하이저널

아침거리로 오랜만에 오징어를 손질하고 있으려니 까마득한 옛날 우리 집 첫 아줌마 생각이 났다. 족히 15년은 지난 일이다. 아주머니에게 오징어껍질 손질만 하고 일찍 가시라 이르고 시장에 다녀왔다. 그랬더니 웬걸! 아줌마는 다리 껍질이 잘 안 벗겨진다며 1시간도 넘게 오징어를 주무르고 있었다. 나는 호의라고 베풀었는데, 일찍 퇴근할 수 없던 아줌마는 되려 벌을 받고 있었다. 

아줌마는 그 무렵 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멀리 있는 고향에 자주 찾아 뵈었다. 한번은 올 때 부리부리한 눈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닭을 비닐봉지에 넣어서 가져왔다. 맘은 고맙지만 무서워 뒤 베란다에 묶어놓았더니, 아래층으로 탈출해버렸다. 다시 잡아다가 난처해하는 나를 위해 아줌마가 시장에 가서 잡아다 주어 고아 먹었는데, 시골에서 기른 토종닭은 뼈부터도 어찌나 단단하고 질기던지…. 그래도 말로만 듣던 바를 실제로 경험하게 되어 내가 좋은 타이타이라는 검증을 받은 듯 영광이었다. 

추위가 기승일 때 또 한차례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온 아줌마에게 ‘아버지 병세는 좀 어떠시냐’는 질문에 “爸爸 走了.”하며 눈물을 떨구었다. 중국어 배울 때 거의 처음 배우게 되는 동사 走. 그렇게 走는 육신을 남기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을 아우르는 동사였다. 익숙한 것의 낯선 얼굴은 언제나 받아들이기 힘겹다. 
두 번째 아줌마는 큰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늘 밝은 미소를 짓는 샤오 페이였다. 

아이하고도 잘 놀아주었고, 시장 본 김에 남편과 뎬동처(电动车)를 타고 와서 부탁하지 않은 채소도 먹으라며 주곤 했다. 또래 친구가 귀했던 그 시절 친구처럼, 동생처럼 의지가 되었던 그녀였다. 그러곤 나에게 둘째가 생겼고, 상해에서 아이를 낳기로 하고는 샤오 페이에게 미역국 끓이는 법, 나물 무치는 법 등 몇 가지를 가르쳤다. 워낙 음식솜씨가 좋았던 그녀는 멸치만 넣고 미역국을 끓여도 맛이 기가 막혔다.  

그 후, 샤오 페이도 둘째를 낳고 몇 년이 지나서 다시 상해로 올라왔다. 중국 과자를 한 아름 들고 찾아온 샤오 페이에게 아줌마가 필요한 집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여러 집을 돌아 다시 우리 집에서 일하게 됐을 때 그녀는 잘 웃고, 일 잘하던 예전의 그 모습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두 아이를 키우며 육아 스트레스로 변해 있었나 보다. 샤오 페이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며 내가 예전과 다르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석연치 않게 홍췐루로 이사 나오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샤오 페이가 마지막으로 일하던 날 그녀를 배웅하며 “우리가 이사 나가서 어떡하지?” 하고 물었더니 그녀는 “没关系.”라며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关系가 중요한 이 나라에서 우리의 인연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 있을까?’ 확고한 그녀의 대답은 이미 오래 전 닫혀버린 마음을 짐작해보게 했다.   

얼마 전 남편이 중국식당에서 키가 큰 아줌마가 애들 이름을 대며 아는 척하더란다. 남편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은 그녀를 조우했던 이야기는 따뜻한 돌봄 속에 커갔던 우리 아이들과 그 무렵 같이 살던 동네 사람들, 들려오는 근황, 그 후 알지 못하는 각자의 삶 등을 불러들였다. 전쟁터 같았던 옛일은 왜 나중엔 아련한 것이 돼버리는지…. 사람이 변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오늘 내가 건네는 말과 마음이 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충분했으면 한다. 

여울소리

<아줌마 이야기> 코너가 올해부터 <허스토리 in 상하이>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상하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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