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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105] 명궁

[2021-03-17, 15:59:40] 상하이저널
이은무 | 태원 | 2015
이은무 | 태원 | 2015

오로지 詩의 길로
여기까지 타고 온 말(言语), 
그 말에서 나는 내린다. 이제부터 남은 길은 내가 말을 태우고 갈 것이다.
- 2105년 시집 명궁에서

시를 몰라도 누구나 한글만 알면 저절로 읽어지는 천성의 맨 가운뎃줄 감성을 심금으로 슬쩍 튕겨주는 시가 되어야 한다고, 그런 시를 쓰겠다던 작가의 11번째 시집 <명궁>이다. 올해 산수(傘壽) 80이 된 작가의 이야기는 크게 신, 삶, 정치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인생의 후반부를 살면서 작가의 삶과 시대상을 옆에서 같이 느끼고 지켜볼 수 있는, 그래서 책 한 권마다 어떤 시대의 아픔이 있었는지를 고스란히 공감할 수 있는 이은무 시인의 시집이다.

신을 향한 트집과 불만, 삶의 희노애락에 좌절하고 기뻐하며 인간에 대한 사랑과 환멸, 참정치로 세상이 좀 더 밝아졌으면 늘 바라던 시인의 시 몇편을 소개해본다.

<국민과 정치>

이따위 시는 쓰지 말아야지 하곤 또 쓴다.
“국민과정치” 제목부터 그렇다.
툭 하면 국민 국민을 파는 정치 
국민을 먹이로 아는 아가리들
하긴 그 밥에 그 나물 꼴의 건망증이 심각한
먹잇감이된 국민이 아닌 국물들
꾹꾹 찍어 들려준 정치와 망치를 구분 못하면서
한참 뒤에서야 욕을 욕을 짖어대는 뭐 같은 국민
물론 우리는 아니어야겠지만
그 나라의 정치
그 나라의 국민수준
제발 이제는 그것들의 밥, 국물이 아닌
주인의 칼을 든 시민이자

<악몽>

마치 환경난민처럼
거대한 유빙을
타고, 떠내려 오는
북극곰을 
누가 보았느냐
아무도 없을 거다
내가 동해안에서 꾼 악몽이었으니까

<틀린 기도>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릅니다 
저들을 용서 하소서”

당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마지막 간청한 기도가 틀린 것이
오늘 이 지경까지,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너무 잘 압니다
저들을 위해 저들을 벌 하소서

결국은 당신의 용서가
저들을 여기까지 타락시킨 꼴입니다.

<늑대>

어느 귀
4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내 귀, 가마득한 망각의 끝에 붙어
늑대의 울음소릴
호모 사피엔스의 귀로 듣는가
엘크와 들소를 쫓는 개가 된 늑대의 질주를
지금 내 귀는
KBS개국 특집무대에서
장사익의 떨림으로 삶의 뼈가 환청으로 녹는
그 4만년뒤 
그 오늘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인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님 퇴임 날이란다.
아, 참 부럽다 부러워

<시간이 가면>

사는게 골 아플땐
발밑이 아닌 먼 산을 보라고
스스로 귀띔을 한다
그리곤 웃는다
시간이 가면 다 그만인것을….

-맺는 말

엘리엇은 ‘위대한 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쓰면서 동시에 자기 시대를 그린다’ 했고, 누군가는 또 ‘시는 인류의 모국어’라고 했다. 

어릴 적 김소월의 시가 엄마 품 같아서 시인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는 작가는 본인의 삶을 고스란히 시에 녹여 시대를 그렸고, 누구보다 시를 사랑했다.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크고 작은 일상을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하얀 눈, 낚시, 바둑 등에 비유하며 더러는 무거운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 툭 이야기 한다. 사실 책 소개를 요청받았을 때 45세가 된 딸인 나는 가장 먼저 팔순에도 여전히 집필을 하고 계신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 아무도 찾지 않는 시집을 계속 출간하시는 것에 대해 했던 어릴 적 반항에 미안함, 이제는 시가 가지는 몇 줄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를 공유하고 싶어 이 책을 소개하게 되었다. 어릴적 아버지가 크리스마스에 베갯머리에 몰래 놓아두셨던 꿈과 사랑이 해마다 연말이 되면 그리움으로 더 크게 다가온다. 책 소개의 글을 쓴 후  ‘장고 끝 악수’일 수도 있다는 농담과 함께 아빠에게 전화를 드렸다. 

가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곶감을 보내드리면 산제사 지내냐고 농담 던지시는 타고난 시인, 괴테의 말과 같이 ‘내가 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시가 만든’ 듯한 나의 아버지의 글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이동숙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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