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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기록

[2021-02-03, 14:10:21] 상하이저널

초등 교사셨던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 특별히 가르치신 것은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 후 매일 꼬박꼬박 일기를 쓰게 하셨는데 언제일지 모르지만 갑자기 검사를 하셨다. 하루 쓰지 않으면 회초리 한 대였기에 나중엔 꾀가 생겨 날씨만 적어 놓고 검사할 분위기만 느껴지면 말 그대로 글짓기 일기장이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방학이면 과제물 상장을 위해 열심히 일기를 썼다. 시골 초등학교였지만 남부럽지 않은 책들과 방과 후면 대출을 해 주는 선생님들의 수고로 시골에서도 매해 1-200권 이상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각종 독후감상대회, 다독대회가 매 달 있어서 뱃지를 하나씩 주었는데 뱃지 욕심에 책을 열심히 읽다가 자연스럽게 책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도 중학교 입학 후에는 사라졌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 전 우리 4남매는 모두 왠만한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할 정도의 글짓기 실력과 누가 보아도 바른 글씨체를 갖게 되었다.

학원이 없던 시절, 중고등학교의 모든 공부는 말 그대로 학교와 도서관에서 자기 주도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시대였다. 여고 시절은 매일 야간 자율학습으로 도서관마저도 일요일만 가능한 시대였다. 오래 몸에 밴 습관 때문인지 TV에서 매주 보는 명화 극장이나 주말의 명화를 통해 좋은 영화를 보거나 교과서나 책을 통해 좋은 글을 만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의 감상을 적어가곤 했다. 국어교과서가 5종이고 각 학교마다 선택이 달라 헌책방에 가면 우리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교과서들을 골라 볼 수 있었다. 입시를 위해서 들여다 보기 시작했는데 각 교과서마다 골라 놓은 책들의 좋은 글들에 매료되었다. 이과생 이었지만 여고생 감성이라는 것이었나 보다. 

안톤시냑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는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교과서 속 수필이다. ‘낙엽을 태우면서’를 읽으며 수필의 정수를 보는 듯 했지만 일제 시대의 암울함 속에서 작가가 느낀 감성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배경을 알고 날 때는 착잡함을 느끼기도 했다. 오직 공부밖에 없는 삭막한 중•고교 시절, 속상하면 속상한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각오와 계획을 적어가며 내 이야기를 기록했다.

선지원 후시험으로 대입 시험이 바뀌는 전환점의 마지막, 고3 전체가 논술 시험을 치르고 대학을 들어 간 마지막 세대였다. 학력고사가 끝난 후에도 매일 학교에서 논술 준비를 했고 평생 쓸 논설문을 한 달 동안 다 썼다. 친정에 가면 아직도 4남매의 기록들이 낡은 단독주택 다락에 있다. 대학에 간 두 아이가 코로나로 구정을 당겨 외갓집에 다녀 왔다. 아이들은 외갓집에 가는 것을 즐긴다. 부모님이 차마 버리지 못하고 놓아 둔 시집, 장가 간 자녀들의 낡은 상장과 기록을 우연히 보게 된 후 들여다 보는 것이 좋았나 보다.

지금도 그 습관이 몸에 베어 나는 매일 일기인 듯, 기도인 듯 나의 하루를 써 내려간다. 그 속엔 일 년, 한 달, 한 주의 계획들도 들어 있고 누군가를 기억해야 할 날들도 적혀 있다. 성실하려 했지만 띄엄띄엄 기록한 육아일기를 보며 결국 매 해 한 권의 노트에 세 아이를 기르며 느꼈던 희로애락을 적어 가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이것을 보며 자라서인지 강제로 가르친 적도 없는데 세 아이 모두 기록을 참 잘하고 글씨도 예쁘고 바르다. 대학을 간 큰 아이는 서툴지만 공부 틈틈이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기록하며 소설도 쓰는 듯 하다. 코로나 시대 대학 신입생인 둘째와 입시생인 막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양한 자기 이야기를 기록하며 지금을 이겨 내는 듯 하다. 무심히 내 인생을 나를 위해 적는 동안 받게 되는 위로가 있다. 20해 전 중국 초창기의 기록들을 들여다 보며 아이들의 어렸을 적을 기억해 보고 그 때의 나를 들여다 본다. 

Renny(rennyhan@hanmail.net)

<아줌마 이야기> 코너가 올해부터 <허스토리 in 상하이>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상하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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