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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_ 최우수상] 랜선 입시부터 대면 개강까지

[2020-12-14, 10:12:00] 상하이저널

한낮의 오각장거리는 겨울이라기엔 따듯한 감이 있어 우리는 얇은 코트 한 겹만으로 바람을 견뎌내며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1학기 마지막 기말고사를 마치고 종강을 맞은 친구는 예정대로 한국으로 귀국할 생각이었고 나는 중국에 남는 탓에 배웅하러 가는 길이었다. 잘 다녀와, 방학 끝나고 보자. 안부 인사를 몇 마디 나누자 연신 손을 흔들던 친구는 육중한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밑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돌아서는 길은 쓸쓸했지만 섭섭하진 않았다. 나는 재수를 할 생각이었고, 다음 달에 대학 입시를 다시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중국 대학 입시는 대개 3월에 시작해 6월에 끝난다. 그중에서도 내가 지원한 학교는 가장 이른 3월에 입학시험이 치러져 나는 종강을 맞은 1월 초부터 개강 전인 2월 말까지의 방학 기간 동안 대비를 해야만 했다. 입시의 중압감에 비하면 한 달 반가량의 시간은 짧디짧다. 작년과 같이 입시 학원에 등록하고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수업 일정을 따라잡는 건 두 번을 겪어도 벅찼지만, 입시까지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안겨다 준 조급함 때문에 나는 난해한 영어 지문을 빠르게 읽어낼 힘을 얻곤 했다. 준비는 순조로웠다. 잘 짜인 특강 프로그램은 합격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학생들을 밀어붙이고 있었고 내 모의고사 성적은 안정권이었다. 진로 상담에서 지도 선생님은 이대로만 가면 된다고 말했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고.

그러나 2월이 되자 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의 대유행은 하룻밤을 넘길 때마다 천 단위의 확진자 수를 갱신했고 정부는 공공시설을 닫고 모임을 금지했다. 입시 학원이 하룻밤 만에 뒤집힌 건 당연한 수순이다. 대면 수업이 금지되자 미처 다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학원은 온라인 수업의 효율을 걱정하며 수업을 중지시켰고 나를 포함한 약 스무 명의 입시생들은 입시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마땅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공중에 붕 떠버렸다. 

페이스 조절에 실패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함만이 두려움의 전부는 아니었다. 식당에서 식사가 금지되고 가게는 문을 닫았으며 모든 공공시설은 체온계와 기록지를 상비하여 모든 방문자의 신원을 기록했다. 예고 없이 닥친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에서 많은 불편을 야기했고, 나는 다른 걱정거리 없이 입시에 집중할 수 있었던 작년과 달리 학원 선생님들이 보내주시는 모의고사 파일에 기대 혼란 속에서 한 달을 보내야만 했다.
 
내게 유일한 위안은 천여 명의 응시생들이 동시에 모여야 하는 대면 입학시험 역시 취소될 것이라는 짐작뿐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교 홈페이지에는 입학시험 연기라는 공지사항이 걸렸다. 정확한 날짜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나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했고 때맞춰 다니던 학교는 개강했다. 전례 없는 전면 인터넷 강의에 중국 곳곳에 퍼져있는 동기들은 강의 시간이 소속감을 느낄 유일한 기회라는 듯이 앞다투어 열성적으로 수업에 참여했고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수업은 입시와 더불어 내게 스트레스를 가져왔다. 

한국을 나간 친구와 자주 연락하게 된 것도 그때이다. 1월 초에 중국을 떠난 친구는 2학기 개강 무렵에도 들어오지 않았고 국경이 닫혀 항공편이 끊기자 어쩔 수 없이 집을 빼야 했다. 처치 곤란한 건 그가 가져가지 못한 짐들뿐만이 아니었는데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던 탓에 중국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인증수단을 받지 못해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워 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조교를 통해 도움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만큼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그에게 몇 마디 가벼운 위로밖에 해줄 수 없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다 지나갈 거야.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대학교에서 메일이 날아든 건 정신없이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간단한 안부 인사로 서두를 뗀 메일은 온라인 입학시험이 치러질 것을 예고했고 이전에 치러진 적이 없는 만큼 조작법을 익히기 위해 자체 모의고사가 공지되었다. 지필시험을 급작스레 인터넷으로 전환한 만큼 서술형은 일일이 사진을 찍어 올리고, 내장 카메라를 시험 내내 켜두어야 하는 등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많았지만 나는 시험이 취소되지 않은 것에 다만 감사했다. 코로나가 앗아간 것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결전의 날은 작년과 다르게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지하철에 몸을 실을 필요도, 고사장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수험표를 검사받을 필요도 없었다. 파랗게 빛나는 컴퓨터 화면은 시험 시작을 알릴 카운트다운만을 비추고 있었고 나는 작년과 유일하게 달라지지 않은, 긴장과 불안으로 점철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시험날이 조금 미뤄졌다 한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짧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카운트다운이 종료되자 첫 번째 시험인 중국어 영역이 해금되었고 지문을 읽기 시작하자 이윽고 세상엔 나와 해답을 기다리는 난제만 남았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합격했다. 필기시험 결과가 다른 때보다 2주 늦게 나왔으며 면접은 어려운 축에 들었지만 합격 메일은 그런 고민거리는 깨끗이 잊게 해줄 정도로 값졌다. 나를 더 기쁘게 한 것은 대면 개강 소식이었는데 국경 내에 유학생들은 학교 출입이 허용된 것이다. 학교를 떠난 1월부터 8개월, 비로소 캠퍼스를 밟을 수 있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다. 이 단순하고 당연한 일상이 실은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코로나는 상기시킨다. 

감염의 위험은 여전히 우리의 주위에서 도사리고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턱 끝까지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 수칙을 지키며, 꼼꼼하게 손을 씻는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지금, 부디 이번 겨울은 지나온 계절만큼 혹독하지 않기를 바란다.

박채원(상하이 푸단대 유학생)


우선 이렇게 큰 상을 주신 상하이저널과 상해한국상회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참가상만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더 잘 봐주신 것 같아 기쁩니다. 저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의 랜선 입시와 대학 생활에 관해 썼는데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코로나라는 악재를 맞은 상황과 온라인 수업을 듣는 한국인 유학생들의 상황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유학생들이 입국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하루빨리 상황이 나아져서 정상적으로 유학 생활을 마칠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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