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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춤추는 빨래

[2019-09-27, 06:22:56] 상하이저널
근심마저 잊게 하는 가을 햇볕과 바람이다. 누군가는 지구 전체에 기분 좋은 에어컨을 가득 켠 듯하다 한다. 따사로운 햇볕에 베란다의 빨래가 춤추는 걸 보니 한여름의 뙤약볕도, 휘몰아치던 태풍도 먼 과거 같다. 비가 오는데 바깥에 있다 보면 가장 먼저 드는 걱정이 베란다였다. 바람으로 베란다 안으로 물이 들이치면 갑작스런 소나기에도 베란다는 작은 홍수가 발생한다. 딸아이 입시로 한국에 있는 사이에 출근한 남편이 태풍 때 활짝 열어 놓은 베란다 때문에 베란다 물난리로 고생을 했다. 어찌 이 뿐이랴. 한창 예민한 중고등 딸들은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되는데 속없이 빨래에서 냄새가 날 때면 볼멘 소리를 한다.

비가 오면 가장 먼저 제습기를 꺼내 베란다에 켜고 빨래를 말린다. 주부인 나부터서도 비 때문에 마르지 않은 빨래 냄새가 싫어 선풍기도 돌리고 제습기도 켠다. 비가 많은 상하이다 보니 세제를 택할 때도 비 오는 날에 말라도 상쾌함을 풍기는 액체세제를 고심해 고른다. 아이들은 향기 진한 섬유유연제를 넣으라 성화지만 무언가가 가미될수록 찜찜해서 액체세제를 넣어도 비 오는 날 마른 빨래 냄새는 별반 다르지 않아 수고 많게 빨래를 말린다. 

방학 때 들른 큰 아이는 기숙사에서 사용해 보니 건조기가 너무 좋더라며 자기가 돈 벌면 건조기부터 사줄 거라 한다. 기특하기도 하고 비가 많은 상하이가 만든 풍경이기도 하다. 혼자 누리기 아까울 정도의 가을 햇볕과 바람이다. 어디에다 저축해 놓았다가 겨울에도, 여름에도 꺼내 보고 싶은 날씨이다. 부지런히 오전에 빨래를 널어 놓으니 빨래들도 가을날이 즐거워 웃으며 춤추고 있다. 저녁에 빨래를 거두어 개키는데 섬유유연제를 넣지 않았어도 가을 바람이 즐거웠는지 빨래에서 기분 좋은 냄새로 가득이다. 

한여름 물난리를 겪은 베란다는 덕분에 대규모 청소를 하고 수리할 곳을 수리하고 단장을 했다. 지금 사는 곳에 이사 온 후, 위층 이웃으로 세 번의 물난리를 겪었다. 싱크대 하수관이 막혔는데 손수 해체해 뚫고 계시는 위층 주인집 할머니 때문에 부엌 천장에서 한 번, 화장실 모기장창이 안 뜯어져 샤워꼭지로 창문에 대 놓고 청소하다가 우리 집 화장실 창을 통해 물이 스며들기를 또 한 번, 위층 화장실 수도관 고장으로 우리 집 화장실 위쪽에서 물이 떨어져 또 한 번. 일이 터질 때마다 내 복장도 터지긴 했지만 그 때마다 조율하며 위층이 고쳐가며 다행히 얼굴 붉히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만 해도 중국 사람들은 빨래를 베란다에 널지 않았다. 아파트 창 밖으로 각 집마다 대나무나 막대기가 걸려 있는 빨래 너는 공간이 있었다. 위험해 보이지만 공짜인 대기에 가장 햇볕을 잘 받는 방법이기도 했다. 쿤산에서 살 때 한 3년 나도 그렇게 빨래를 말렸다. 짧은 시간에도 뽀송뽀송하게 잘 말랐다. 빨래를 널고 걷고 할 때의 수고가 있지만 비가 많은 지역 주민들의 지혜가 담긴 방법이었음을 본다.

상하이에 이사 온 후 내가 살던 곳에서 더 이상 이렇게 빨래 말리는 걸 보지 못했다. 우리 위층 할머니가 가을바람으로 흥에 겨웠는지 갑자기 10년 전에나 보던 빨래 말리는 걸이를 만드시더니 얼마 전부터 창밖에 빨래를 널어 말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보니 위층할머니 빨래가 유난히 흥겹게 흔들어 댄다. 집 안에서도 위층 할머니 빨래들이 춤추고 있는 것이 그림자로 투영된다. 가을하늘 아래 춤추는 빨래들로 내 마음까지 춤을 춘다. 가을 바람에 염려까지 접어 날려 보낸다. 

Renny(denren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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