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 다산책방 | 2018.5.
조남주 작가의 <그녀 이름은>을 소개하기에 앞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책 <82년생 김지영>을 언급 안 할 수가 없다. 바로 조남주 작가를 세상에 알리고 ‘오늘의 작가상’까지 수상하게 만든 책이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갸우뚱했다. 내면 묘사도 거의 없고, 문학 세포 팡팡 터지게 하는 문장 한 줄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가지고 있던 ‘소설이란’, ‘문학이란’하는 기준과 한참이나 다른 이 새로운 소설은 솔직히 좀 반칙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반칙 같은, 소설 같지 않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울컥하고 억울하고 참 슬펐다. 아주 보편적인 여성의 삶을 그냥 스케치하듯 보여줬을 뿐인데 말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이야기들은 실은 누구에게도 아무렇지 ‘않지’ 않아야 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여성이기 때문에 엄마이기 때문에 아내이기 때문에 며느리이기 때문에 계속 감내할 것인지, 작가는 절망 끝자락에서 우리에게 반문하고 있었던 듯하다.
조남주 작가는 지난해 1년간 경향신문 '그녀의 이름을 부르다'라는 코너에 르포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연재를 위해 아홉 살부터 예순아홉 살까지 다양한 여성들 60여 명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이후 28편의 짧은 소설들로 재구성해 소설집으로 출간한 것이 <그녀의 이름은>이다.
작품 속에는 직장인 성희롱 피해자, KTX 해고 여승무원, 학교 조리사 노동자, 국회 청소노동자, 총장 사퇴 요구 시위에 참여한 여대생 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딸, 엄마, 며느리, 할머니의 익숙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여전히 문체는 건조하고 담담하다. 거리를 두고 읽히다가 어느 순간 행간의 분노가 예리하게 훅 들어온다. 기쁨의 ‘울컥’을 선사할 때도 있다. 생리대 값이 없어서 일주일 동안 결석을 해야 했던 중학생 이야기는 두고두고 가슴이 저린다. 이쯤 되니 문학적 포만감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현실에 두 발 딛고 있는 이 작품들은 의미 있는 사회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으니까.
여성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남성분들에게, 우리 사는 거 별일 아닌데 싶지만 뭔가 답답한 여성분들에게, 그리고 솔직하게는 그냥 모든 분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김경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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