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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추억의 힘

[2017-08-08, 18:44:55] 상하이저널

두달 간의 길고 긴 여름방학, 관측사상 최고 기온을 경신하고 있던 불타는 상하이를 뒤로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다녀왔다. "무조건 열심히 놀기!"로 방학 계획을 잡았었는데 미국으로 이민간 큰아버지가 사촌들과 방학을 지내러 온다는 소식에 급하게 결정된 한국행이었다. 날짜가 다가올 수록 아이 아빠는 사촌들과의 첫만남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설명했고 아빠가 도착할 때까지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당부를 놓지 않았다. 그런데 아홉 평생 이종사촌 한 명을 제외하고는 이웃사촌만 만나봤던 아이에게 아빠의 신신당부가 부담이 되었나 보다. 

요즘 남녀칠세부동석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듯 보였던 녀석이 동갑내기 여자 사촌과 같이 지내기 싫다고 결국 눈물까지 흘렸었다. 생각지 못했던 아이의 반응에 남편은 조금 당황하면서 마음이 상한 모습이었다. 환경에 적응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아이 입장에서 처음 보는 사촌은 그냥 남일 뿐 이유없이 잘 지내야 할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촌끼리 화목하게 잘 지낼 모습을 기대했을 남편과 처음 보는 사람들과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해야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아이, 둘의 마음이 모두 이해가 가기에 어느 쪽의 편도 들 수가 없었다. 결국 서로의 마음을 풀지 못한 채로 비행기에 올랐고 아이들은 사촌들과 다소 어색한 생애 첫만남을 갖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10남매, 어머니는 7남매로 명절이나 행사 때 가족들이 모이면 사촌들의 숫자만도 어마어마 했다. 시골 친할머니 댁에 일이 있어 식구들이 다 모이게 되면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밤이 되면 잘 곳이 마땅치 않아 마음이 맞는 사촌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인심 좋은 친척집을 찾아 다녔는데 누구네 몇째인지 소개만하면 우리들만의 아지트를 내어주셨다. 밀린 얘기를 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세워도 힘든 줄 몰랐었다. 여름 방학이 되면 바닷가에 사는 이모 댁에 모여 실컷 해수욕을 하고 겨울 방학이 되면 농사를 짓던 셋째 큰 아빠 댁에 집합해 황소에게 밥도 주고 논에서 얼음도 지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각자 사는 게 바빠 자주 볼 수 없지만 오래간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공유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포함한 도시에서 나고 자라난 요즘 아이들은 함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기회조차 갖기가 어렵다. 각자의 삶이 바빠 만날 기회가 없기도 하지만 우리 세대가 부모님만큼 형제가 많지 않기도 하고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아 만날 사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의가 아니지만 진심으로 미안한 일 중의 하나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도착한 아이들은 미리 사진으로 열심히 얼굴을 익혀 뒀던 사촌들을 만나러 친가로 향했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까지 큰아이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지만 다행히 동갑내기 막내 사촌과 금세 공감대를 찾았다. 각각 중국과 미국에서 자라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체험을 시작으로 남산관광을(N타워에 올라 서울을 둘러보는 것도 좋았지만 오전에 봉화체험과 오후에 열리는 사물놀이와 검술공연은 아이들이 엄지척! 할 정도로 멋있었다), 용산에서 ITX열차를 타고 떠난 춘천에서는 닭갈비로 배를 채우고 애니메이션박물관과 로봇 체험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또한 오락실을 거쳐야만 마무리되는 저녁 마실은 아이들이 제일 손꼽아 기다리는 일과였다. 폭염을 뚫고 아이들과 이곳 저곳을 다니는 게 쉽지 않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기억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준 것 같아 뿌듯하다. 아이들에게도 두고두고 되새길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보리수(nasamo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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