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여름에 매우 더운 도시들을 일컬어 '4대화로(四大火炉)'라고 한다. 사람들 사이에 한 도시 정도는 다르게 회자되기도 하지만 전통적 4대 화로는 충칭(重庆), 우한(武汉), 난창(南昌), 창사(长沙)다.
그러다가 2010년 중국기상청에서 중국 4대 화로 도시를 다시 발표했고, 새롭게 지목된 도시는 바로 충칭(重庆), 푸저우(福州), 항저우(杭州), 난창(南昌) 등이다. 뜨거운 정도, 고온 일수, 연속적으로 고온이었던 날의 수, 여름 평균 기온과 최저 기온들의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더운 도시로 선정된다. 그 중 상하이도 15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우리는 여름마다 선풍기나 에어컨 같은 전기기구를 사용하여 여름을 이겨낼 수 있지만 중국의 옛 선인들은 어떻게 더위를 이겨냈던 것일까? 각 지역마다, 시대마다, 개인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더위를 슬기롭게 이겨 나가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더위를 극복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 잘 알려진 방법 중 하나는 얼음을 사용해 더위에 인한 병들에 대처하는 것이다. 주나라 때 중에서도 서주(西周) 시기에 쓰인 《시경, 7월(诗经.七月)》에는 "착빙총총(凿冰冲冲)"이라는 표현과 함께 “12월에 얼음을 뜷어 정월에 빙고로 옮겨 저장한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후 춘추전국시대에는 냉장고와 비슷한 기구인 빙지엔(冰鉴)이 출현했다. 빙지엔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용기(容器)였는데 안과 밖, 두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바깥층은 얼음으로 채워넣어졌고 안쪽 층에 상하기 쉬운 음식이나 술을 넣었다. 더위를 쫓기 위해서 사람들은 음식이나 음료를 이 에 넣어 음식을 시원하게 먹기도 했고, 빙지엔(冰鉴)에 구멍을 내어 바닥에 두면 방안을 냉기로 차게 하여 시원하게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한나라 시대에는 “엽륜발풍(叶轮拨风)“이라는 바람을 일으키는 대형기구가 제작되었다. 《서경잡기(西京杂记)》에 의하면 “장안(시안의 옛 이름)의 한 기술자가 지름이 1장(10척, 약 33.3m) 에 이르는 바퀴로 이루어진 부채를 제작했는데 한 사람이 이를 작동을 시키니 서늘한 기운이 온 방에 돌았다”고 한다. 이 설명을 바탕으로 이 기구에 대한 추측을 할 수 있는데 한 사람이 손잡이를 돌리면 7개의 날개가 달린 커다란 바퀴가 돌아가면서 바람을 일으키는 원리로 작동되는 것이다.
이후 당나라 때에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렁우(冷屋)”가 나타났다. 이런 방들이 낮은 온도를 유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물레방아의 원리를 이용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를 작동시켜 방에 시원한 공기를 불어 넣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물을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계 장치를 사용하여 물이 지붕 위에서부터 처마를 따라 아래로 흐르도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래로 흐르는 물이 ‘커튼’의 역할을 하면서 방의 온도가 내려가게 된다. 이렇듯 렁우를 유지하려면 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방들은 주로 물가에 지어졌다.
송나라 때 등장한 “렁띠엔(冷殿)”은 당나라의 “렁우”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피서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렁띠엔은 단순했던 렁우보다 더욱 호화롭게 지어졌다. 이 공간은 렁우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여 시원할 뿐만이 아니라 아니라 저수지와 대청 곳곳에 화초가 심어져 있어 방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에서 꽃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덥다면 시원한 곳을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피서법이다. 중국 청나라에서는 강희황제 이후의 황제들은 본래의 거처인 고궁(故宫)을 떠나 이허위안(颐和园), 위안밍위안(圆明园), 그리고 청더(承德)에 위치해 있는 피서산장(避暑山庄)으로 가서 여름을 지냈다. 그러나 이런 피서 방법은 일반인들은 사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널리 사용되는 방법은 아니었다.
중국의 옛 선인들은 이런 다양한 방법을 통해 여름의 더위를 피해왔다. 옛날 사람들의 여름을 지내는 여러 피서법으로부터 당시 그들의 지혜와 풍류를 엿볼 수 있다.
학생기자 박현서(상해한국학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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