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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내리사랑

[2017-05-10, 18:40:14] 상하이저널

결혼 10년만에 첫아이를 낳았던 그 순간의 기억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해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도 빠짐없이 세세한 묘사가 가능할 것같다. 수술 전날 밤 부른 배를 잡고 병원 지하의 긴 복도를 걸어 마지막 검사를 하러 갔을 때의 떨림, 걱정과 설렘으로 밤을 꼴딱 새우고 마주 했던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 처음 들은 너의 우렁찬 울음 소리와 빨간 얼굴, 정신을 차렸을 때 따뜻하게 두 손 잡아주셨던 회복실 간호사님의 목소리까지 하나도 빠짐 없이 말이다. 그 세세한 묘사 어디에도 긴 시간 동안 너를 기다리며 느꼈던 슬픔과 좌절, 절망의 느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날은 너를 품에 안았을 때의 충만한 행복감, 우리를 부모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 너에 대한 고마움과 기나긴 기다림의 터널을 벗어난 기쁨과 감격을 나누기에도 부족한 하루였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 아이는 저절로 자라 출산이 되는 걸로 알던 때가 있었다. 실제로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들의 출산소식은 부럽기도 했고 조급한 마음이 들게도 했다. 대학 동기들 중 처음으로 결혼을 한 내가 한참 뒤에 결혼한 친구들이 학부모가 될 때까지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해 들려오는 말들도 많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더 홀가분하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남들과 다른 결핍이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참 못나게 살았던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나에게 찾아온 첫아이는 더욱더 소중할 수 밖에 없었다. 뱃속에 있을 때 편하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온전히 잘 자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기만을 기도하며 열 달을 보냈고, 그날 이후의 나의 삶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 작은 생명체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어느덧 큰아이가 아홉살 둘째가 여섯 살이 되어 이른 아침 같은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를 한다. 요즘 내가 종종 듣는 말이 있는데 작은 아이를 티나게 예뻐한다는 것이다. 둘째를 임신하면서 큰아이가 동생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나 역시 큰아이에게 쏟았던 사랑만큼 둘째를 예뻐할 수 있을 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이런 반전 결과가 있을 줄이야... 둘째는 숨만 쉬어도 예쁘다는 엄마들이 많다. 첫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양육에 대한 마음가짐에 여유가 생겨서 일 수도 있고, 출생과 동시에 형제자매라는 선의의 경쟁상대를 갖게 되는 둘째들의 생존능력(빠른 눈치와 넘치는 애교)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부모를 사로잡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모순이 생겨나는데 큰아이를 통해 깨달은 여유로움이 오직 둘째에게만 완벽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두 아이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결코 다르지 않고, 아이들의 성장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큰아이에게는 조금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큰아이도 아직 어린 아이인데 말이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라는 질문을 해본다. 그때마다 둘의 대답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나!". 가끔 동시에 답을 구해 엄마를 당황시킬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차례차례 품에 안고 귓속말로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옛말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는데 요즘 난 이 녀석들이 주는 넘치는 치사랑에 황송할 지경이다. 엄마 마음 알아줘서 고마워! 엄마가 더 노력할게!

 

보리수 nasamo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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