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논란으로 한중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상하이 교민사회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홍췐루를 찾는 중국인들의 발걸음이 확연히 줄었다. 식당, 마트, 쇼핑몰 등이 한산해졌다. 중국인 고객이 발길이 끊겨서만은 아니다.
교민들도 모임, 술자리, 식사약속 등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특히 3월 15일 소비자의 날 홍췐루는 ‘썰렁’ 그 자체였다. 공안국이 이날 ‘반한 시위’의 진상을 밝히고 유언비어라고 알렸지만 교민들의 우려와 불안심리를 떨쳐내진 못했다. 중국에서 오랜 기간 지낸 교민들은 ‘한중 수교 25년, 중국생활에 이처럼 움츠러들었던 적이 없었다’며 안타까워한다.
행사 계약 취소 잇달아
각 기관과 단체의 행사 취소도 이어지고 있다. 무역협회 상하이지부는 내달 15일로 예정됐던 ‘주중한국기업 채용박람회’를 취소, 연기했다. 올해로 7년째를 맞는 채용박람회는 매년 약 60여 기업, 2500여 구직자들이 참가해왔다. 올해도 이미 많은 한국기업들이 신청접수를 마쳤지만 안타깝게 행사는 무기한 연기됐다.
상해한국학교에서 매년 상하이 임시정부수립기념일에 맞춰 진행했던 ‘임시정부발자취를 찾아서’도 올해는 어렵게 됐다. 이 행사는 매년 4월 초 상해한국학교 고등학생과 교사 등 약 200명이 마당루(马当路) 임시정부청사에서 루쉰공원 매헌까지 걸으며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를 되새기는 의미 있는 현장교육이다. 그러나 최근 한중 갈등이 고조된 분위기를 고려해 올해는 취소하기로 한 것이다.
동호회의 야외 행사도 마찬가지다. 이달 25일 개최 예정이었던 상하이한인테니스연합회 대회도 무기한 연기됐다. 테니스연합회 측은 “요즘 분위기에서는 많은 분들이 모이는 행사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가 있어 동호인들의 열의에 부응하지 못하고 연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쉽고 안타깝다”고 밝혔다.
한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업체들도 급작스런 계약 취소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특히 ‘한류’ ‘한식’ 콘텐츠로 중국 사업에 부푼 꿈을 가졌던 업체들의 계획은 무산될 위기다.
여행업 직격탄, 한중 노선 축소
업계 곳곳의 타격도 크다. 중국여행 예약률이 뚝 떨어지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등 항공사들은 한중 노선을 축소키로 했다. 대한항공은 다음달 23일까지 8곳의 운항 79회를 감편했다. 부산-상하이 6회, 청주-항저우도 8회 줄어든다. 아시아나항공도 내달 30일까지 12개 중국 노선에서 총 90회를 줄일 계획이다. 인천-상하이, 인천-베이징 등 노선을 단발성으로 11회 줄인다. 이스타항공은 닝보, 진장, 선양, 하얼빈 노선을 내달 30일까지 중단하기로 했다.
특히 현지 여행사는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내 반한 뉴스는 한국 단체관광은 물론 개별 손님들 발까지 묶어 놓았다. 여행사뿐 아니라 단체여행객을 주 고객으로 영업해왔던 식당도 영향이 크다. 우중루 한 식당은 평소 같으면 한국단체객들로 붐빌 점심시간에 종업원 수보다도 적은 고객 몇몇이 넓은 홀을 채우고 있다.
사정은 난징루, 쉬자후이 등 시내 중심가 한식당도 마찬가지다. 지방도시에 부는 한류 바람을 이용해 한식당 투자에 참여했던 한 교민은 망연자실이다. 이 분위기가 지속되면 조만간 문닫는 한식당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젊은 층의 반응도 차갑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10~20대 고객으로 붐볐던 마당루 ‘라인 캐릭터샵’도 한산해졌다.
온라인몰 게시글 ‘한국제품 안사’
온라인쇼핑몰 한국매장들은 직접적인 매출 영향보다 게시판 글로 불매운동이 조장되는 분위기다. 티몰 쇼핑몰 관계자는 “아직까지 매출에 본격적인 영향은 없으나 ‘다시는 한국제품 안산다(再不买韩国货了)’는 류의 글들이 상당 수 올라오고 있으며, 또 YG몰에서는 환불 사유로 ‘나라 앞에서는 아이돌도 없다(国家面前无爱豆)’라고 기입하고, 취소 환불을 신청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또 “알리바바 역시 한국제품 프로모션을 자제하고 있어 고객 유입이 약간 줄었다”고 온라인몰의 한국매장 상황을 전했다.
물류, 유통 분야는 더욱 심각하다. 한중 해상 EMS가 중단됐다. 해관에서 모든 제품에 상품검사를 실시해 통관시간이 지연되고 있다. 보세창고 등에 입고 보류시키는 곳도 상당수 된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직구몰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중국 비즈니스 물거품 ‘우려’
교민들은 5년 전 댜오위다오(조어도) 영토분쟁을 둘러싼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에서 촉발된 이와 유사한 상황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당시 양국 갈등 쟁점은 해결되지 못했지만 격하게 드러냈던 반일 감정은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그라졌다. 최근 한중 갈등도 이처럼 잠재워지기를 기다리는 교민들이 대부분이다.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 한국 음식점을 이용하는 등 서로 돕는 마음으로 위기를 헤쳐나가자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반면, 일부 교민들 중에는 ‘안전’을 위해 ‘가만 있으라’는 정부의 지침이 최선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들은 최근 임시정부청사 앞에서 ‘사드 배치를 차기 정권에 넘기고 잠정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중국시장에 수년간 쏟았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우려하는 교민들, 정부의 선택으로 숨고를 틈 없이 코너에 몰린 비즈니스, 그 해결책이 ‘시간’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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