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충격과 경악을 넘어 공포에까지 휩싸였다. 10월 24일 JTBC의 단독보도가 시발점이 된 일명 ‘최순실 국정농단 논란’은 현시점까지 사그라질 기미 없이 더욱더 큰 논란만 낳으며 온 나라를 혼란과 분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 언론은 시시각각 저마다의 특종을 ‘단독 보도’하고 있고, 정치계, 재계, 또 관련 없어 보이는 연예계까지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감히 ‘역대급’이라 표현할 수 있는 유례없는 이 사건에 국민은 이례적인, 하지만 당연한 폭발적 반응을 보였다. 포털사이트엔 관련 검색어가 쉼 없이 오르내렸고, 관련 기사의 조회 수와 댓글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또, 지난 12일 광화문에는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응집하며 이번 사태에 대한 분노를 한 목소리로 표현했으며, 중고등학생까지도 참여하며 사건의 현황에 주시하고 있다.
예상하건대, 대부분의 국민이 시위에 나서게 된 이유는 결코 누군가의 강압적 권유도, 간곡한 부탁도, 또 정치적 계산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이번 사태가 마음속 깊은 무언가를 건드렸고, 그 변화가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고, 그리고 그것이 행동의 실천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나 또한 그러한 감정을 느꼈고, 그 감정을 감히 상실감이라 명명하고 싶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올라오는 찬 바람을 우리 모두 느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되었듯, 많은 사람들은 이번 논란을 ’국정농단’이라 부른다. 국정농단은 ‘국정’과 ‘농단’의 합성어로, ‘나라의 정치’라는 뜻의 ‘국정’과 ‘이익과 권리를 독점한다’는 뜻의 ‘농단’이 합쳐져 나라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독차지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것이 많은 국민에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증명되지 않은 누군가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치부되어 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 또는 여기에 ‘인간 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오포세대’라는 단어로 알 수 있듯, 현재 우리의 사회에는 ‘먹고 살기 어려워’ 보통이라 여겨지던 것까지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통과된 법안과 낭비된 혈세는 정부가 국민의 아픔에, 힘듦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뿐만 아니라, 그 법안과 혈세가 도저히 자격이 있다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또 그들에 의해 쓰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큰 회의감을 느낀다.
우리는 보통 권리와 의무는 함께 따라오는 것이라 배운다.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를 누리려면, 의무 또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묵인하에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다른 의무를 이행한 국민보다 더욱더 큰 권리만 누렸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동안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의미 없어 지는 것과 같은 허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번 논란은 국민이 평소 추구하던 ‘성취’의 의미마저 퇴색시켜 버린다. 성취의 진정한 가치는, 그 결과와 함께 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들였던 노력에 있다. 사람들에게 ‘성취’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그 것을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별다른 것을 얻어내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지금껏 가졌던 성취의 의미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고구마 줄기처럼, 좀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발견되는 사실들은 우리 국민에게 이젠 ‘상실감’을 넘어 ‘좌절’까지 느끼게 한다. 이미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 어긋나서 어디서부터 바로잡을 수 있을 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나’하는 ‘자괴감’까지 들게 한다. 한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무겁고, 또 무서운 일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오천만 국민들의 삶과 미래를 살아갈 다음 세대들의 출발점과 과거를 살았던 선조들의 희생과 헌신을 책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정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결코 농담이 아니다.
고등부 학생기자 손예원(NAIS Y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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