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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사연을 감추고 있는 이름, ‘며느리밑씻개’

[2016-08-18, 16:54:43] 상하이저널

[우리말 이야기(31)]
부끄러운 사연을 감추고 있는 이름, ‘며느리밑씻개’


무더위가 한창인 요즘, 들판에 나가 보면 길가나 냇가, 논둑 밭둑 등 어디서나 흔히 며느리밑씻개 또는 그 형제 격인 며느리배꼽의 가시 돋친 덩굴이 제멋대로 벋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는 여전히 헷갈리지만, 가벼운 여름 옷차림으로 무심코 풀섶에 들어섰다가 거꾸로 난 날카로운 가시에 쓸려 팔다리에 피가 맺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뒷면에 가시가 가득하면서도 새콤한 삼각형 이파리를 쉽게 잊지 못할 겁니다.

 

저는 고마리 닮은 조그만 분홍빛 꽃들이 올망졸망 한데 모여 피어 있는 모습,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서 꽃이 진 자리마다 열 몇 개씩 달린 팥알만 한 동그란 열매가 파란빛, 보랏빛을 거쳐 검게 변해 가는 모습이 어쩌다 눈에 띄면, 그 앙증맞은 모습에 홀려 가던 길을 잊은 채 잎을 한두 장 뜯어 그 새콤하고 까칠한 느낌을 혀로 느끼면서 한참씩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 ‘며느리밑씻개’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다 그에 얽힌 슬픈 사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저 또한 얼마 전까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름을 듣는 순간 누구나 ‘심술궂은 시어미에게 구박받는 불쌍한 며느리의 애잔한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그런 전설은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요즘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이 흔해 빠진 가시덩굴을 ‘며느리밑씻개’라는 얄궂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겨우 80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문화에 얼룩진 우리 문화의 본모습을 찾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연구하고 있는 이윤옥 선생이 낸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에 따르면, 이 풀에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처음 붙은 것은 1937년에 나온 “조선식물향명”이라는 책에서입니다. 그에 앞서 1921년에 나온 “조선식물명휘(名彙)”만 보더라도 '사광이아재비'라는 버젓한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십여 년 후 난데없이 ‘며느리밑씻개’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식물학자들은 이 풀의 원래 이름 '사광이아재비'를 버리고 대신 일본 이름인 ‘마마꼬노시리누구이(継子の尻拭い)’, 즉 ‘의붓자식의 궁둥이 닦기’에서 ‘의붓자식’만 ‘며느리’로 바꾸어 올린 겁니다. 아울러 ‘사광이풀’에도 ‘며느리배꼽’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무리 일제강점기라 해도 한국인 학자들이 낸 책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광이’란 살쾡이, 즉 고양이 종류를 뜻하는 것으로 봅니다. 고양이나 살쾡이, 호랑이 등 고양잇과의 육식동물들은 속이 불편하면 시큼한 풀을 뜯어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잘 먹는 풀에 ‘괭이밥’, ‘사광이풀’ 같은 이름을 붙였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요.

 

한편으로는 ‘소리쟁이’, ‘싱아’, ‘수영’, ‘까치수염’ 등 이름에 ‘ㅅ’ 자가 들어간 풀들은 대체로 신맛을 내므로, ‘사광이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신맛이 나는 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광이아재비’를 찾아보면 ‘며느리밑씻개의 북한어’, ‘사광이풀’은→’며느리배꼽’이라고만 나와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잊힌 ‘사광이풀’, ‘사광이아재비’라는 우리 이름이 북쪽에서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지요. 종종 그렇습니다만 북쪽이 남쪽보다는 훨씬 더 우리말 지킴이 노릇에 충실합니다. 언젠가 얘기했듯이 일본식 표현이라고 모두 뒤집어엎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최소한 그 유래쯤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것이 아닌데 우리 것으로 착각해서는 꼴이 우스워집니다.

 

* 이 글을 쓰는 데는 거의 모두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윤옥, 인물과사상사, 2015)”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http://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00579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87106&cid=58395&categoryId=58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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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이후 현재까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전교조신문(현 교육희망)>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월간 <우리교육> 기자 및 출판부장(1990~1992), <교육희망> 교열부장(2001~2006) 등을 역임했다. 1989년 이후 민주언론운동협회가 주최하는 대학언론강좌를 비롯하여 전국 여러 대학 학보사와 교지편집위, 한겨레문화센터, 다수 신문사 등에서 대학생, 기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리말과 글쓰기 강의를 해오고 있다. 또한 <교육희망>, <우리교육>, <독서평설>, <빨간펜> 등에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논술) 강좌 등을 기고 또는 연재 중이다.
ccamya@hanmail.net    [김효곤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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