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넘보라살’을 아십니까?

[2016-06-24, 18:53:57] 상하이저널

[우리말 이야기 25]
‘넘보라살’을 아십니까?


‘산수(算數, 지금의 수학)’ 시간, 비좁은 교실 하나에 백 명 가까이 빽빽이 들어앉은 코흘리개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자를 대고 서투른 솜씨로 갖가지 ‘네모꼴’을 그립니다. 그 다음에는 서로 마주 보는 ‘꼭짓점’을 이어 ‘맞모금’을 긋습니다. 그러면서 ‘바른네모꼴’이나 ‘긴네모꼴’과는 달리 ‘마름모꼴’이나 ‘사다리꼴’에서는 ‘맞모금’의 길이가 서로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네모꼴을 맞모금에 맞춰 절반으로 나누면 세모꼴 두 개가 되지요.   


다음은 ‘자연(지금의 과학) 시간, 선생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는 일곱 가지 빛 말고도 다른 빛이 더 있다고 하십니다. 무지갯빛 맨 위에 있는 빨간빛 바깥쪽으로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넘빨강살’이 있고, 맨 밑 보랏빛 바깥으로는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넘보라살’이 있다는 것이지요.


엄연한 빛인데도 눈에 안 보이는 이 빛들이 열을 전하기도 하고 살균작용을 하기도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대놓고 의심하는 발칙한 어린이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이 세상이 참으로 신기할 뿐이지요.


아울러 삼대 영양소로는 녹말과 ‘흰자질’, ‘굳기름’이 있다는 것도 배웁니다. 흰자질이란 ‘달걀흰자의 주성분’이란 뜻이고, 굳기름은 ‘굳은 기름’, 즉 고체 상태의 기름이라는 말입니다. 선생님은 이 세 가지를 고루고루 잘 먹어야 키도 커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멀건 고깃국 구경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니 대부분 아이들에게 굳기름과 흰자질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딱 50년 전인 1960년대 중반, 서울의 한 ‘국민학교’ 교실 풍경입니다. 어른 말씀 잘 듣는 ‘새 나라의 어린이’들은 책상 하나를 반으로 갈라 앉은 짝꿍과 자리싸움을 하면서도 선생님의 이야기에 쫑긋 귀를 기울였습니다. 위와 같은 수학-과학 용어들은 실제로 그때 수업시간에 썼던 말들이지요.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니 이러한 순우리말 용어들은 몽땅 삼각형(三角形), 사각형(四角形), 대각선(對角線), 적외선(赤外線), 자외선(紫外線), 단백질(蛋白質), 지방(脂肪) 등 한자어로 바뀝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말은 꼭짓점, 마름모꼴, 사다리꼴 정도뿐입니다. 까닭을 잘 모르는 어린 우리는 ‘굳이 우리말 놓아두고 한자어로 다 바꿀 까닭이 있나?’, '왜 자꾸 말을 바꿔서 우리만 골치아프게 하지?' 하고 잠시 의문을 품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말 용어들을 슬그머니 잊으면서 한자 용어에 익숙해졌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던 ‘세모꼴’, ‘넘보라살’, ‘흰자질’ 같은 말들을 굳이 바꿀 까닭이 있었을까? 실제로 어린이들은 전혀 거부감 없이 순우리말 용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넘보라살’ 하면 ‘보랏빛 너머에서 비치는 빛살’이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 거였지요. 그러나 당시는 한글전용주의자들과 국한문 혼용주의자들이 치열하게 다투던 시절이라 한 세력의 차고 기욺에 따라 용어들조차 생겨나고 사라지고를 거듭했던 것이지요.


세월이 흘러 이제는 거의 한글만 쓰는 것이 대세이긴 하지만, 기왕 한글을 쓰기로 작정한다면 ‘삼각형’보다는 ‘세모꼴’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 8월 1일이후 재외국민 소급 등록 전면 금지 hot 2016.07.22
    미등록자 특례․부동산․세금 불이익 위험 7월 31일까지 한시적 소급 등록 가능  8월 1일부터 재외국민 소급등록이 전면적으로 금지된다. 따라서..
  • 마야하이탄 7월 2일 정식 개장 hot 2016.06.30
    마야하이탄워터파크(玛雅海滩水公园)가 재미와 스릴이 더해진,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맞는다. 젊은층과 가족단위 여행객들을 겨냥한 놀이구역이 올해..
  •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 욱일기 2016.06.24
    [학생기자 논단] 지난 5월 25일,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할 것으로 예상된 6개국 함정 중 일본 함정 2척에 욱일기가 달려있어 논란이 됐다. 이 같은 사실이 우리...
  • IT기업협의회 비즈니스 세미나 개최 2016.06.24
    “한국IT기업 통합 플랫폼 구축해야”김창해 대표 ‘B2C2C 비즈니스 모델’ 제안재상해․화동한국IT기업협의회(이하 IT기업협의회)가 마련한 두 번째 비즈니스 세미..
  • [인터뷰] 김용성 코웨이 해외사업본부장 hot 2016.06.24
    중국 교민들은 물과 공기에 민감한 환경에 놓여있다. 갓 중국으로 이사 온 교민들에게 정수기는 필수 체크리스트가 된지 오래다. 공기청정기는 최근 몇 년 새 일반 가..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2.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3. JD닷컴, 3분기 실적 기대치 상회…..
  4. 바이두, 첫 AI 안경 발표…촬영,..
  5.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6.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7. 中 하늘 나는 ‘eVTOL’ 상용화에..
  8. 上海 디즈니랜드, 12월 23일부터..
  9. [무역협회] 미국의 對中 기술 제재가..
  10. 샤오미, 3분기 매출 17조…역대 최..

경제

  1.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2. JD닷컴, 3분기 실적 기대치 상회…..
  3. 바이두, 첫 AI 안경 발표…촬영,..
  4.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5. 中 하늘 나는 ‘eVTOL’ 상용화에..
  6. 샤오미, 3분기 매출 17조…역대 최..
  7. 中 올해 명품 매출 18~20% 줄어..
  8. 중국 전기차 폭발적 성장세, 연 생산..
  9. 中 세계 최초 폴더블폰 개발사 로우위..
  10. 푸동공항, T3터미널 핵심 공사 시작

사회

  1.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2.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3. 上海 디즈니랜드, 12월 23일부터..
  4. 상하이 심플리타이, 줄폐업에 대표 ‘..
  5. 유심칩 교체 문자, 진짜일까 피싱일까..
  6. 上海 아파트 상가에 ‘펫 장례식장’..

문화

  1. [책읽는 상하이 259] 사건
  2. [책읽는 상하이 260] 앵무새 죽이..
  3. [신간안내] 상하이희망도서관 2024..
  4. 상하이 북코리아 ‘한강’ 작품 8권..

오피니언

  1. [인물열전 2] 중국 최고의 문장 고..
  2. [무역협회] 미국의 對中 기술 제재가..
  3. [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 한인..
  4. [허스토리 in 상하이] 당신은 무엇..
  5. 상해흥사단, 과거와 현재의 공존 '난..
  6. [박물관 리터러시 ②] ‘고려’의 흔..
  7. [허스토리 in 상하이] 떠나요 둘이..
  8. [산행일지 9] 세월의 흔적과 운치가..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