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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중일 넘나드는 뮤지컬 히로인 홍본영

[2015-08-22, 23:01:14]
 
중국 창작 뮤지컬 <상해탄(上海滩)> 주연 배우
한국의 한 뮤지컬 배우가 한•중•일 3개국 무대에서 3개국어로 주연 역을 소화했다. 대사와 가사 전달이 생명인 뮤지컬에서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연기를 한다니. 으레 유년기를 해외에서 보냈거나 부모님 국적이 다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도록 일본어도, 중국어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황무지에서 꽃을 틔운 뮤지컬배우 홍본영, 그녀를 만났다.

우연히 온 기회
계획해서 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성악을 전공한 그녀가 우연히 일본에 가는 뮤지컬 연수단에 합류하게 된 게 그 시작이었다. 2주간 뮤지컬을 10편 넘게 볼 수 있다는 말에 따라 별 뜻 없이 따라나선 그 길은 그녀의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당시 공연계의 거장 김효경 교수는 유망한 졸업생들을 데리고 일본에 가 극단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는데 40명 중 4명에게만 주어진 합격의 영광이 홍본영에게 돌아갔다.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도 구분하지 못했던, 뮤지컬은 생각도 해본 적 없었던 그녀는 그렇게 일본의 극단 ‘사계’에서 뮤지컬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느리지만 정석대로
백지상태로 시작했으니 고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일본인처럼 자연스러운 발음을 하기 위해 ‘와타시’만 7시간을 반복했고,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오가는 왕복 2시간 동안 일본어 교재 상•하권을 통째로 외워버렸다. 다행히도 그 과정에서 노하우를 체득해 중국어는 좀 더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듣는 귀가 발달했다고 해요. 빠르고 총명한 방법은 아닌 것 같지만 저는 일본에서나 중국에서나 그들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교통질서 지키듯이 반드시 지키려 했어요.”
이런 악바리 근성 덕분에 일본 관객들은 무대 위 배우가 한국인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중국 공연에서는 여전히 성조가 숙제로 남아있지만 관객들은 ‘중국어로 연기하는 한국 배우’를 대단히 여기며 그녀의 도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스승 故김효경 교수
한•중•일 삼국을 누비는 뮤지컬 히로인이 되기까지는 스스로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믿어준 김효경 교수가 있었다. 김 교수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홍본영을 ‘좋은 작품이 있다’며 한국으로 불렀고, 그녀는 <투란도> 오디션에 만장일치로 합격하며 주인공이 됐다. 그런 그녀를 또 다시 이곳 중국으로 부른 이 역시 김 교수였다. 2013년 겨울 <상해탄> 오디션의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여한 그녀는 김 교수의 채근에 얼떨결에 노래를 부르게 됐고, 그 노래는 중국 JDF뮤지컬컴퍼니 대표로 하여금 ‘배우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보컬 강사로 <상해탄>에 합류한 그녀는 마침내 지난 6월, 주연 배우로 무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홍본영의 수호천사를 자청했던 김효경 교수는 올 1월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스승을 회상하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중국 배우들에게 발성 수업을 하고 있는 홍본영
중국 배우들에게 발성 수업을 하고 있는 홍본영

뮤지컬 <상해탄(上海滩)>
뮤지컬 <상해탄>은 프랑스인들이 상하이를 조계지로 만들던 시기를 배경으로 서구 열강 외국인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중국인들의 세력 다툼을 다룬 이야기다. 나라를 지키려는 중국인과 나라를 팔아서라도 자기이익을 취하려는 중국인 간의 갈등 구조를 그리고 있다.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운 그녀는 때때로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로부터 온도 차를 느끼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극단에서 활동하는 동안은 홍본영이라는 이름 석자를 내걸고 무대에 오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인임을 밝히고 무대에 오르는 지금이 그녀는 정말 행복하다. 가끔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에 찾아가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한국인 관객들이 있어 더욱 힘이 난다.

3국의 뮤지컬 시장
한•중•일의 뮤지컬 시장에 대해 물었다.
“일본은 이미 뮤지컬 역사가 아주 길다. 일본에서 몸담았던 극단 사계는 창단한 지 60년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극단도 관객도 탄탄해 안정적인 문화시장이 형성돼 있다. 한국은 관객들이 아주 뜨겁다. 배우로서는 그 뜨거운 박수를 받는다는 데서 큰 성취감을 느낀다. 특히 팬층이 잘 형성돼있어서 배우에게 힘이 돼주는 건 부러운 점이다. 중국은 이제 막 발전하는 단계에 있어 앞서 말한 장점들은 없다. 하지만 3~5년 내에 뮤지컬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다.”

 
해외무대의 가능성
그녀는 꿈이 있는 후배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뮤지컬은 종합예술이에요. 노래, 연기뿐 아니라 언어까지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본인들이 노력만 한다면 일본에도 중국에도 기회는 열려 있어요.”
얼마 전 상하이에서 한국 배우를 대상으로 뮤지컬 <라이온 킹> 출연진 오디션을 진행했다. 앞으로는 얼마든지 기회가 많아질 것이란 얘기다. 극단 사계에서도 주인공 10명 중 6~7명이 한국인이었을 만큼 한국 배우들이 인정 받고 있다. 특히 노래는 아시아에서 한국인을 따라갈 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시아 뮤지컬계를 잇는 통로가 되길 희망한다. “한중일 삼국이 정말 좋은 것들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할 수 있다면 제가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고, 기회만 된다면 후배들에게도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설 거예요.”
이렇게 거침없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미래를 계획하지 않아요. 준비하고 때가 되면 반드시 얻으리란 생각을 하죠.”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 할 그녀의 미래가 머지 않아 보인다.

김혜련 기자


뮤지컬 상해탄
•공연일시: 매주 목~일 저녁 7시 15분
•공연장소: JDF 운봉극장 静安区北京西路1700号
•티켓 가격: 180~880元
•예매: www.jdfsho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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