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늦은 설날을 맞이하는 2015년이다. 달력의 계절과 실제 계절과의 차이를 조절하기 위해 윤달이 끼다 보니 여느해 같으면 이미 설날이 이미 지나갔을 날짜다.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가 쌀과자, 콩과자, 메밀묵, 타래과에 쑥떡, 조청, 강정을 만드시던 모습이 학습이 되어서인지 설이 다가오니 슬슬 손이 근질거린다. 여러 해 동안 너무 먹고 싶어 깨강정을 설음식으로 열심히 만들었다.
최근엔 곶감에 호두, 잣 박아 모양을 내 간식으로 준비하기도 하고 썰어 수정과에 함께 담아내기도 하였다. 설이면 두 해전 95세로 수를 다하신 할머니가 생각나는 절기다. 80세까지도 설이면 한 달 전부터 정말로 부지런히 일 년 농사한 작물로 설 준비를 하셨다. 할머니의 반토막 밖에 안되는 나이에 올해는 그냥 지나가고픈 나를 보며 고개를 숙여 본다.
겨울 옷짐이 부담이 되어, 여러 이유로 한국 방문을 여름방학으로 옮긴 지 여러 해 되었다. 양가의 서운함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SNS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설 아침상과 세배를 전송하는 시대가 되었다. 간단한 설상을 위한 반찬이야 한다지만 올해는 기억에 남을 간식으로 무얼 만드나 고민을 하다 타래과에 꽂혔다. 유난히 타래과를 좋아하셨던 할머니가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더불어 이제는 자라서 엄마와 요리를 함께하고픈 두 딸들을 생각하니 설 주전부리도 바뀐다. 항상 엄마 혼자서 뚝딱뚝딱 만드는 모습을 구경만 하다가 함께 만든다니 딸들도 흥분한 모양새다.
인터넷에서 타래과를 검색하고 아이들에게 모양이며 재료며 만드는 법을 소개해 줬다. 집에 콩가루와 녹차가루가 있어서 영양과 색을 더한 반죽을 하기로 했다. 타래과는 생긴 모양이 ‘매화나무에 참새가 앉은 모습과 같다’하여 매작과라고도 한다. 각 집마다 만드는 방법이 같은 이름인데도 차이가 있었다. 투박한 할머니의 손이 생강을 갈아 베보자기에 담아 꼭 짜내어 반죽을 위해 넣으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손녀의 뇌리에 이렇듯 선명한 걸 보면 정말 매 해 한 해도 안 거르셨던 설 간식이었다.
타래과의 풍미가 진한 것은 바로 이 생강때문임을 안다. 인터넷엔 식용유를 넣어 반죽하라 되어 있지만 할머니는 늘 참기름을 넣으셨다. 유난히 큰 중국 생강을 곱게 갈아 즙을 내 듬뿍 넣고, 고소한 참기름을 넣어 반죽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딸들이 곧잘 해 낸다. 반죽을 숙성시킨 후 밀가루를 뿌리고 얇게 반죽을 미는 작업까지 함께 하니 다들 제과, 제빵사가 된 마냥 신이 났다.
일정 간격으로 잘라 칼집을 내고 뒤집어 모양 만드는 걸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진다.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름에 튀겨내니 그 자태가 환상적이다. 튀겨내는 간식인지라 늘 머뭇거렸던 간식이 딸들이 커감에 따라 함께 만들기 가장 좋은 간식으로 둔갑했다.
조청이 없어 시럽을 만들어 덧입히고 잣가루를 솔솔 뿌려 주었다. 이 날 이후로 아이들은 전통과자 예찬론자들이 되었다. 떡국 먹는 설날이 코앞이다. 우리집 아이들이 한국엔 못가지만 ‘설이다’며 행복해 한다. 수북히 튀겨낸 타래과가 ‘설이다’며 와글와글 떠든다.
▷Renny(renny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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