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관계개선 염두 둔 행보인듯
3일 오전 10시 중국 베이징 남서부 루거우차오(노구교) 옆 중국인민항일전쟁 기념관. 이틀간의 폭우 뒤 화창하게 갠 하늘 아래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해 리커창 총리와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중국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 7명 전원이 나란히 섰다.
이 자리에서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시스트전쟁 승리 69주년 기념식'이 치러졌다. 중국은 올해 처음으로 이날을 항일승리기념일로 정했다. 시 주석을 비롯한 상무위원들이 기념관 안 열사 부조상 앞에 헌화했다. 14년의 항일전쟁 기간을 상징하는 14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당시 희생된 3500만명의 중국인들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 3500마리가 창공을 날았다.
장중한 분위기였지만 기념식은 시진핑 주석의 연설 없이 15분 만에 끝났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주요 행사에서 최고 지도자가 연설을 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행사는 중화민족의 승리와 단결을 강조하는 국내 정치적 목적에 더욱 초점이 맞춰졌다는 분석이 많다. 시 주석은 기념식 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피할 수 있으며 미래는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며 "당, 군, 모든 민족과 인민이 한마음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을 위해 분투하자"고 말했다. 일본 비판보다는 '중국의 꿈' 실현을 강조한 것이다. <신화통신>도 평론에서 "과거 승리를 미래의 새로운 승리로 계승하자"며 "시진핑 동지와 당 중앙의 지도 아래 단결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새 영광의 역사를 써 가자"고 주장했다.
한편에선 시 주석이 공개연설을 생략한 것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있다. 시 주석은 두 달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7·7사변'(일제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된 노구교 사건) 기념식 연설에서 "역사를 부정하거나 미화하려는 그 누구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한 바 있다. 시 주석은 좌담회에서는 "검은 것은 검은 것이고, 흰 것은 흰 것이다. 수만마디 말로도 사실을 바꿀 순 없다. 일본이 중국과 아시아 각국에 전대미문의 참상을 끼친 군국주의 역사를 반성해야만 중-일 관계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최근엔 강경했던 중국의 대일 분위기가 최근엔 다소 누그러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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