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학들은 9월 학기제를 채택하고 있다. 6월에 신입생을 선발해서 9월 초에 새 학년을 시작한다. 중국 사람들은 대학입시를 ‘가오카오(高考)’라고 부른다. 대학을 ‘고교(高校)’라고 부르니 ‘가오카오’란 ‘고교 입학시험(考試)’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우리의 고등학교는 ‘가오중(高中)’이라고 부르고, 중학교는 ‘추중(初中)’이라고 부른다.
올해의 가오카오는 지난 6월 7일과 8일 이틀 동안 중국대륙 전역에서 치러졌다. 올해 가오카오에는 모두 939만명이 응시했다. 2013학년도보다 27만명이 늘었다. 대학 입학 정원은 698만명이고, 이 가운데 이른바 ‘본과(本科)’라고 부르는 일반대학 정원이 363만명이다. 일종의 전문대학에 해당하는 ‘가오즈(高職)’ 정원은 335만명이다.
중국의 가오카오는 첫째 날 오전 9시부터 2시간 반 동안 어문(語文)과목을,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은 수학시험을 치른다. 둘째날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문과 또는 이과 종합시험을 치르고,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영어시험을 치른다.
중국 일반 시민들의 가오카오에 대한 관심은 첫날, 첫째 시간에 치르는 어문과목의 작문 제목에 집중된다. 각 성(省)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800자 이내의 글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작문의 제목이다. 작문은 공통 기본 주제와 지방에 따라 달라지는 1개의 주제가 출제되는데, 이 중 화제가 되는 것은 각 지역별로 다르게 출제되는 작문의 제목이다. 특히 상하이(上海)의 작문 제목은 철학적 분위기를 풍기는 흐름을 가지고 있다.
4만5000명이 응시한 올해 상하이시의 가오카오 작문 제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다음의 글 재료에 근거해서 스스로 글의 방향과 제목을 정하고, 800자 이내의 문장을 쓰라. 단 시가(詩歌)를 써서는 안 된다.… (글 재료) 당신이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자유롭다. 그러나 당신이 사막을 꼭 통과해야 한다면 당신은 이미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중국어로 800자라면, 한글로는 2000자, 다시 말해 200자 원고지로 10장 분량이라고 보면 된다. 첫째 시간 어문과목의 작문 시험이 종료되면, 해당 교육위원회는 작문의 제목을 일반에 공개한다. 미디어들은 작문의 제목을 화제로 기사를 쓰고, 관련 전공의 대학교수나 고교 어문교사들의 말을 인용해 가며 작문의 주제에 대한 풀이를 온오프라인 신문에 싣는다. 중국 미디어들은 가오카오 자체보다는 작문의 주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 대체로 신문의 첫 페이지에 톱뉴스로 커다랗게 소개한다.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해방일보(解放日報)는 화동(華東)사범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해서 “이번 상하이의 작문 제목은 등급이 상품(上品)”이라고 평가하고, 논리적인 문장 전개 능력과 사고의 깊이를 측정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유를 쟁취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에서는 대체로 뜻대로 되지 않고 일정한 제약을 받게 되며, 특정 조건 아래에서만 자유를 쟁취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논지를 펴면 높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막이라는 단어가 제시하는 것은 자유를 쟁취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뜻이 항상 현실사회에서 제약을 받는다는 은유라고 설명됐다. 수험생들은 생활 주변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어떤 고난에도 맞서 도전을 하는 동안 자아를 극복하게 되고 자유도 획득할 수 있다는 요지로 문장을 전개하면 된다는 해설도 게재했다.
상하이사범대학의 문학 교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생활의 체험을 통해서 현실세계에는 항상 모순과 갈등이 존재하며, 이 같은 모순과 갈등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그런 뜻에서 사막이란 여러 가지 선택을 통해 극복해야 할 대상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점을 밝혀야 한다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글을 써나가기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제 중심도시 상하이가 자유와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각종 모순과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를 작문의 주제로 제시했다면, 정치 중심도시 베이징은 ‘老規矩(낡은 규율)’이라는 세 글자로 된 제목의 정치성 짙은 주제를 내걸었다. 수도이자 정치의 중심지로서, 현재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있는 시진핑(習近平) 당총서기의 정치적 드라이브를 떠올리게 하는 화두를 가오카오 작문 주제로 내걸었다.
그런가 하면 1978년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이 가장 먼저 경제특구를 설치한 광동(廣東)성은 개혁개방의 1번지답게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비교해서 논하라’는 문제를 냈다. 광동성 교육위원회가 글의 재료로 제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흑백필름의 시대에 우리 주변에는 사진이 많지 않았다. 인생의 몇몇 순간을 기록하는 데 이용될 뿐이기 때문이었다. 영원히 퇴색하지 않는 기억을 담은 것이 사진이어야 하지만, 사진은 인화지 자체도 점점 누런색으로 퇴색하고, 인화된 이미지도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와서는 사진이 많아졌다. 일상생활의 순간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사진이라고 그 개념부터가 바뀌었다.…”
광동성의 대입 수험생이라면 위의 글재료를 바탕으로 과연 어떤 논지의 글을 풀어나가야 하는지, 솔직히 말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필자로서도 언뜻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중국이 대학입시를 치르면서 수험생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논리 전개 능력을 테스트 하는 수험과목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론 놀랍고 한편으론 부럽다.
물론 우리도 대학별로 논술고사를 거치게는 되어 있지만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다. 이른바 찍기 방식의 객관식 시험이 우리의 수능인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논술고사는 채점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특정한 조건의 틀에 수험생들의 사고를 정형화하는 내용의 논술 주제를 제시하는 데 머문다.
프랑스에서는 고교 때부터 철학 강의를 듣는다고도 하고, 미국의 대학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학생들에게 몇 장에 걸친 장문의 답안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의 대학입시 과정에서는 철학에 대한 기본 소양이라든가, 수사학(修辭學)에 대한 지식, 아니 나아가서 생각을 정리해서 자신의 논리의 틀을 잘 세우고 정리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과목을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의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일찌감치 수사학을 배우고, 철학과목 공부를 통해 논리적인 문장 전개 능력을 확보한다는 사실을 부러워하기만 해서는 안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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