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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산

[2014-06-10, 15:42:29] 상하이저널

봄이 되면 봄이라서 갈색의 나무에 생명력 더해지는 산하에 진달래꽃, 개나리꽃 수 놓은 한국의 산들이 떠오른다. 그 산에서 봄이면 고사리 꺾으시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버들강아지 싹틈이 반가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몇 가지 꺾어서 집에 꽂아 두었더랬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찾아 드는 이들에게 시원한 쉼을 주는 울창하게 우거진 푸르른 숲과 계곡을 간직한 고국의 산들이 눈에 가득 찬다. 나의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여름산은 향촌의 아이들에게 산딸기, 찔래 등 많은 간식거리를 주었더랬다. 산에서 뱀을 만날까 무서워 집에서 키우는 복실이를 앞세우고 여러 명의 아이들이 그릇, 주전자 하나씩 들고 산딸기 따러 가던 정겨운 풍경이 그려진다. 이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그려 보고 싶건만. 맛있는 음식이 지천임에도 가끔은 내 어릴 적 그 새빨갛고 작은 산딸기 먹던 그 맛을 기억해내려 애쓴다. 한국을 방문할 때 여름 산을 방문하면 오솔길 좌우에 행여 산딸기가 보일까 찾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내장산에서 백양사를 가로지르며 만끽했던 단풍들, 마치 오색 물감으로 마술을 부려 놓은 듯 꽃이 아님에도 화려하게 수놓아진 설악산의 단풍들을 잊을 수 없다. 가을이면 한국의 산이 그리워 비행기를 타고 한국의 산을 오르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인이 가을만 되면 SNS를 통해 보내 주는 가을 산을 보며 그 아쉬움을 달랜 게 몇 해던가? 그래도 요즈음 상하이의 가을이 내 고향의 가을 날씨를 닮아가는 듯 하지만 내 스스로 고국의 가을산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한다 생각하곤 한다.

눈이 없는 상하이, 눈으로 가득 덮인 산행의 맛을 알기에 유난히 으스스한 상하이에서 한국의 겨울 산이 또한 유난히 그립고 그립다. 휴일에 눈이 내리는 아침이 되면 가방 하나에 뜨거운 옥수수차 한 병, 간단한 먹거리 하나 배낭에 챙겨 등산화에 아이젠 채워 달고 바스락 소리나는 눈 덮인 산을 오르던 겨울 산행. 어릴 적 살던 동네엔 마을 뒷산 뒤에 지도에도 기록된 꽤 높은 산이 하나 있었다. 겨울이면 그 산을 넘지 못한 구름들이 눈이 되어 내리는 바람에 마을은 그 어느 동네보다 눈이 풍성한 마을이었다. 덕분에 놀이 시설 하나 없는 시골 마을의 겨울은 아이들에게 어느 곳 부럽지 않는 즐거운 놀이동산이었다.

돌이켜 보니 나에게 흐르는 대한민국의 DNA는 우리나라의 4계절을 가득 담은 대한민국의 산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유난히 산이 없는 중국의 북경, 상하이에서의 18년의 삶이 내게 산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선 간절함으로까지 발전했다.

산이 그리워 상하이 가까이에 있다는 항저우 인근의 교민들이 자주 찾는 안지, 모간산을 가 보지만 한국의 산들이 주는 풍광과 다른 낯섦이 있다. 한국의 산들에 대한 그리움만 더해질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산들은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산들이다. 뿐이랴 산이 산으로 이어지는 곡선은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닮아 있고 결코 모나지 않다. 산이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며 릴레이 하듯 이어지는 그 풍광을 따스하게 기억하는 나.
 
모간산에 오르며 상하이에서 볼 수 없는 산이 주는 축복에 감사하면서도 어딘가 우리네 산들과 다른 날카로움, 뾰족함들 속에서 고운 선의 자태를 지닌 이방인의 고국의 산 회상이 계속됨을 막을 길이 없다.

한국을 방문하며 아이들은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일부러 기차를 이용한다. 도착 때까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끊이지 않는 산들의 연속에 상하이에서만 살던 아이들이 늘 토끼눈이 된다. 365일 산 하나 없는 이국의 도시에서 살다가 한 달 남짓 체류 기간 동안 보여지는 산들에 적응될 만도 하건만 도착 첫 날은 늘 그 많은 산을 보며 여기도 산, 저기도 산 그런다. 서산보다 좀 더 큰 나지막한 이름 모를 동네 뒤의 산 이름을 내게 묻지만 내가 알 리 없다. 대한민국에는 그런 산이 수천 개는 될 터인데. 그 중 하나만 옮겨 놓아도 상하이에 명물이 될 뒷산이 흔하디 흔하다. 상하이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서산을 좋아한다. 그 나지막한 산이 주는 푸르름과 싱그러움을 아이들도 아는게다. 한국의 작은 산 하나도 푸르르기는 또 왜 그리 푸르른지.

올 해도 여름방학을 앞 두고 아이들 못지 않게 올 해 다시 만날 고국의 산들에 벌써 내 마음이 설렌다. 올 핸 그 어느 이름 모를 산에서 우연히라도 어릴 적 산딸기를 마주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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