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문학은 긴 역사만큼이나 종류가 다양하다. 시대적 배경, 종교 등에 따라 여러 형식과 색체로 나뉘었고 아시아지역 문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상고문학, 근현대문학, 당대문학 등으로 크게 나뉘는 중국 문학에 대해 알아보자. 이번 주는 수당오대십국 중 당나라에 관해 소개하고자 한다.
수당오대십국 시대적 배경
수당오대십국 문학은 당시 현황을 참고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후한 말, 황건의 난이 일어난 이후, 중국은 오랫동안 분열을 겪으며 여러 민족간의 융합이 이루어진다. 당시를 통합해 ‘위진남북조’라고 부르는데, 이때 민족 사이의 갈등과 모순이 점차 해소되면서 사회적인 발전일 이룩할 수 있었으며, 결국 수(隋)나라가 남북을 통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서기 581년, 양견(杨坚)은 남북조(南北朝) 시대 말 무렵 북조의 북주(北周) 정제(静帝)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위에 올라 국호를 수라고 하고 도읍을 장안(长安)으로 정했다. 이가 바로 수 문제(文帝)로, 서기 588년에는 강남의 진(晋, 남조의 마지막 국가)을 정복해 오랫동안 분열됐던 중국을 통일시켰다.
중국문학의 황금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시가, 산문, 소설 등 각종 문학형식이 발전하며 성숙했고, 훗날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 받는다. 그중 고전시가는 당대에 접어들며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300여 년 동안 지속된 당대에는 사회 각계 각층,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름난 시인들이 출몰했을 정도였다. 중국 당 300년은 시에 있어서, 초당(初唐)·성당(盛唐)·중당(中唐)·만당(晚唐) 네 가지 당시(唐诗)를 구분하고 있다.
만당(836~907년) 안사의 난(안록사의 난)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당의 국력은 만당에 이르러 더욱 혼란한 정치 현상을 드러냈다. 중앙의 힘이 차츰 약해지고 지방 세력들이 강해지는 사회현상으로 인해 학술과 문화의 중요성이 낮아졌고, 문학 역시 변화됐다.
만당 때 문학은 두 가지 특성을 띄며 발전했다. 유미주의적 시풍을 띄는 초당 때의 문학과 사실주의적 작풍이 특징인 성당 후기의 문학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유미주의적 시풍은 성당의 예술적 기교를 따르며, 청아하면서도 섬세한 풍격을 나타내기도 하고, 세련된 언어로 특유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했다. 따라서 후대 시인들은 만당의 시를 은은한 향을 지닌 가을 꽃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가들로는 두목(杜牧), 이상은(李商隐), 온정균(温庭筠) 등을 들 수 있으며, 사실주의적 시풍의 시인들로 피일휴(皮日休), 섭이중(聂夷中), 두순학(杜荀鹤) 등을 꼽을 수 있다.
두목 (803~852) 만당 시인 중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 받는 두목은 관찰사, 중서사인 등 많은 관직을 역임했으며, 호탕하고 낭만적인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매사에 구애받지 않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당나라의 멸망을 막기 위해 정치와 병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산문에도 뛰어났지만 시에 더 뛰어났으며, 7언시와 절구가 으뜸으로 손꼽히고, 만당 시의 특징처럼 글의 수식에 능했고 내용을 중시했다.
두목의 시는 풍류를 즐기기 위한 풍류시와 과거의 역사를 노래한 영사, 시사 풍자에 뛰어날 뿐 아니라 강건한 면을 갖춰 인상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남(江南)의 풍경을 그림처럼 표현한 ‘강남춘 (江南春)’과 ‘권토중래(卷土重来)’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인 해하 전투에서 패한 항우가 오강(乌江)까지 도망쳐 왔을 때의 일을 노래한 ‘제오강정(题乌江亭)’이 유명하다.
강남춘
千里莺啼绿映红,천지에 꾀꼬리 소리, 푸르고 붉은 꽃들이 서로 비추고
水村山郭酒旗风。강마을 산어귀에 술집 깃발 펄럭이는데
南朝四百八十寺,남조 때의 480개 절이
多少楼台烟雨中。다소 누대가 안개비 속에 잠겼구나
제오강정
胜败兵家事不期,승패란 병가에서 기약할 수 없는 것
包羞忍耻是男儿。수치를 안고 부끄러움을 견디는 게 남아라네
江东子弟多才俊,강동의 자제에 숨은 인재가 많다 하나
卷土重来未可知。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돌아올런지도 알 수 없나
이상은 (812~858) 두보와 더불어 만당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하나다.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당나라 후기, 두 정파 사이를 내왕해 절조를 비난받기도 했었다.
이상은의 시는 서정적인 작품이 많고 수사를 중요시해 정말하고 화려하다. 또한 인용구가 많아 시를 지을 때 참고 서적이 많았다고 전해지며, 이를 보고 다른 시인들이 ‘물개가 물고기를 늘어놓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의 시는 당나라 말기 이후, 오대십국까지 크게 유행했고 온정균과 함께 ‘서곤체 시파(西昆体诗派)’라고 불렸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의산시집(李义山诗集)과 서곤창수집(西昆酬唱集)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등낙유원(登乐游原)이 있다.
向晚意不适, 저녁때가 다 되어 가는데 마음 울적하여,
驱车登古原。 수레 몰아 낙유 고원에 오르니,
夕阳无限好, 지는 해가 무한히 좋음은,
只是近黄昏。 다만 황혼이 가까워서이리라.
온정균 (812~866) 시를 잘 짓기로 유명했던 온정균은 과거 시험장에서 8번 팔짱을 끼니 8운시가 완성됐다고 해 온팔차(溫八叉)라고도 불렸지만, 행실이 나빠 급제하지 못했다. 훗날 벼슬에 올랐지만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온정균은 만당 시인 중 작품이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영향력 또한 컸다. 특히 그의 시는 화려하고 농염한 묘사가 특징을 이루며, 화려한 시풍은 오대십국에 접어들며 더욱 심화됐다.
특히 오대십국의 화간파(花间派) 문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줬기 때문에 화간비조(花间鼻祖)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정균의 시는 여인들의 아름다운 자태와 애정, 육감을 표현하고 있어 여리고 화려하다고 평가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망강남(望江南)’이 있다.
梳洗罢, 머리를 씻고 빗고 화장한 뒤,
独倚望江楼。 홀로 강루에 기대어 서서 바라본다.
过尽千帆皆不是, 지나가는 배 수없이 많아도 임의 배는 아니네,
斜晖脉脉水悠悠。 석양은 빛나며 강물은 유유히 흐르는데,
肠断肠断白苹洲。 애간장 끊어질 듯한 백빈주
섭이중 (837~884) 만당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과거에 급제했으나 전쟁과 당쟁으로 오랫동안 임용되지 못하다 훗날 지방의 하급 관료로 임명됐다. 곤궁한 삶을 이어가던 그의 생활은 시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서민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악부시에 능했다.
특히 그의 시 상전가(伤田家)를 통해 사실적인 시의 내용을 엿볼 수 있다. 농민들의 빈곤하고 힘든 삶을 시로 표현한 상전가는 피폐한 농민들의 생활을 대변하며 군왕의 통치가 잘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해 그의 대표적인 시로도 손꼽힌다.
二月卖新丝,
五月粜新谷。
医得眼前疮,
剜却心头肉。
我愿君王心,
化作光明烛。
不照绮罗筵,
只照逃亡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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