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칼럼]정부 때문에 혁신 불가능하다는 중국인들
기자가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던 2001년, 중국이 ‘보아오(博鳌) 포럼’이라는 것을 만든다고 했다. “짝퉁 다보스 포럼이 하나 더 생기겠군…”이라던 당시 외신들의 비아냥이 생생히 기억난다. 13년째 포럼, 어떻게 변했을까? 지난주 보아오 포럼 취재에 나서면서 든 생각이다.
회의 첫날인 8일 밤, ‘혁신’을 주제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중국인과 외국인 참석자가 작은 ‘설전’을 벌였다. “중국은 화약•나침반 등을 발명한 나라다. 그 혁신DNA가 살아나고 있다.” 상대가 이를 반박한다. “4대 발명품 얘기는 송(宋)나라 이전의 케케묵은 얘기다. 지금 혁신은 불가능하다.” 앞 발언은 중국인이 했을 법한 얘기고, 뒤는 외국인의 말로 들린다. 그러나 반대였다. 외국 전문가들은 중국의 혁신 능력을 높게 평가한 반면 중국 참석자들은 ‘지금 체제로는 불가능하다’라는 식이었다.
중국 참석자들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작심한 듯 정부를 비난했다. 그들의 얘기는 이랬다.
“기업인들은 애써 기술 개발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정부 관리들과 ‘관시(關系)’를 쌓는 게 훨씬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구미에 맞는 기업에 일거리를 몰아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혁신이 가능하겠는가?”(가오지판 텐허태양광 사장).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정부 지원으로 성공했느냐? 정부가 뭘 지원한다고 나설 때, 바로 그때 혁신은 끝나는 것이다. 기업은 정부 자금 받으려 줄을 설 것이고, 경쟁과 자율이라는 ‘혁신 생태계’는 망가지게 되어 있다.”(장웨이잉 베이징대 교수).
모두 ‘정부는 시장에서 손을 떼라’는 외침이다. “샤오미(小米), 알리바바, 화웨이(華爲) 등 세계적인 혁신 기업이 중국에서 탄생하고 있다”(그레고리 깁 상하이국제금융자산거래소 이사장)는 서방 전문가의 목소리는 이내 묻히고 말았다.
회의장을 가득 메운 150여 명의 청중은 그들의 대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시계는 밤 10시를 넘기고 있는데도 자리를 뜨는 이가 없다. 인터넷은 이를 생중계했다. 회의를 지켜보던 가오안밍(高岸明) 차이나데일리 부편집장은 “혁신에 목말라 있는 중국의 현실을 보여준 회의”라고 평가했다.
포럼 4일간 열린 70여 개의 회의가 대부분 그랬다. 전 세계에서 초청된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은 중진국 함정 돌파 방안, 아시아 산업의 공급처 변화와 대응, FTA 등을 놓고 토론하고, 고민했다. 모두 중국이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이거나, 세계가 중국에 듣고 싶은 내용이다. 각 세션 제목만 봐도 중국의 고민이 무엇인지, 중국이 어디로 가려하는지 등을 읽을 수 있다.
‘짝퉁’이라는 비아냥 속에서 출발한 보아오 포럼. 그러나 지금의 보아오 포럼은 ‘짝퉁’도 아니요, ‘아시아의 다보스 포럼’도 아닌, 그냥 ‘중국의 보아오 포럼’일 뿐이다. ‘중국의 내일을 보려면 보아오로 가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보아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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