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에 잠시 글을 썼던 게 벌써 2년도 넘은 것 같다. 첫번째 글은 '당•나•귀',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이라는 주제였다고 기억한다. 지금 내가 살아있는 이 시간 나와 관계맺고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은 어찌보면 우리가 삶을 다하는 날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여전히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와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세계, 그 속에서 나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제 투또우(土豆)에서 머리도 식힐 겸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봤는데 젊은 대통령이 “부모와 가족,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옆 집에 사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라는 아빠의 가르침을 회고하며 때로는 한 사람을 위한 대통령이 될 줄 알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실천하는 모습에 마음이 참 훈훈해졌다.
우리네 정치 현실에 대한 소박한 바램을 유쾌하게 풀어낸 영화였지만 정치적인 메시지보다는 내 가족, 내 것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누군가 '한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줄 수 있는 것을 줄 때 나와 함께 그 한 사람과 세상이 얼마나 따뜻하게 회복될 수 있는가 하는 열린 시선을 다시 생각케 해주었다.
세상의 정의, 평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 그리 멀지 않은 생활 속에 있다는 생각이 열릴 때 내가 가진 돈과 친절과 관심, 시간, 재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그 한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을까 하는, 어찌보면 가장 정치적인 상념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에서 가장 정치적이고도 인간적인 눈으로 ‘한 사람’을 발견하고 깊은 애정으로 그 삶을 해석해내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단연 시인 고은이 아닐까. 그의 만인보를 다 읽진 못했지만 자기의 바깥 세계를 이렇게 따뜻하고도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을까 감탄도 되고, 길가의 한 포기 잡초처럼 무심히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삶의 향기를 찾아주는 시인의 애정과 통찰력에 그 분의 어떤 행보보다 더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
그가 인생에서 찾아내는 아름다움과 향기는 때로 너무나 단조롭고 질박하지만 그런 만큼 성실하고 참되다. 상하이에서 10여 년을 살다 보니 해를 거듭할 수록 관계도 더 폭이 좁아지고 무감각해진다. 많고 많은 이 땅의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바람과 같고….
삶이 행복해지려면 우선 자신과 화해해야 하고 세상에 대해, 구체적인 한 사람에게 따뜻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가운데 30여년에 걸쳐 이어졌던 고은님의 만인보가 다시 색다르게 읽힌다.
상하이에서의 10년, 나도 그런 애정어린 통찰력으로 누군가를 그려내며 그들의 삶에 고운 색채를, 향기를 찾아주고 덧입힐 수는 없을까? 감히 해본 생각이지만 나로부터 ‘한 사람’을 찾아내는 릴레이가 시작되어 우리 모두가 함께 상하이 만인보를 완성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분좋은 꿈을 꾸어본다. 다음 번엔 상하이 만인보 첫 편을 시작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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