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10년 넘게 살다 보니 현지에서 명절을 지내는 횟수도 점점 늘어난다. 내 몸에 밴 대한민국 DNA? 친정 풍속이 있어서인지 추석, 설날이면 늘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비록 몸은 한국을 떠나 이 곳 상해에 있지만 내 기억 속 시계가 한국의 명절을 따라가고 있다.
그래 추석이 되면 가까운 지인이라도 불러 식사할 요량으로 전을 부치며 꼭 송편을 만든다. 초록색을 내는 모싯잎이나 쑥을 구하기 힘들어 나름 개발하게 된 것이 깻잎송편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모싯잎을 가마솥에 삶아 건져 쌀과 함께 떡방앗간에 가져가 반죽 해 오던 기억을 더듬어 나도 깻잎을 삶아 갈아 반죽했더니 멋진 송편이 되었다. 올해는 한국에 있던 친정 엄마도 귀찮으셨는지 내가 개발한 깻잎으로 송편 반죽을 했단다. 상해에서는 귀한 캠벨 포도가 보이던 때는 포도를 갈아 반죽했더니 향긋하고 멋진 보라색빛 나는 송편을 빚기도 했다.
유난히 빠른 2014년 설, 우리의 설을 맞으며, 지금 이맘때쯤이면 펼쳐지는 내 어릴 적 우리집 풍경이 떠오른다. 강정을 준비하고, 타래과를 만들고, 조청을 다리고, 메밀묵을 만들고, 한 해 길러 온 닭을 잡아 떡국용 고기로 밑간 해 준비하고, 방앗간에서 만들어 온 가래떡을 대청마루에서 하루 굳혀 떡국용 떡으로 썰어 냈다. 하도 재밌어 보여 나도 뛰어들지만 굳은 가래떡 썰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설날마다 한국에 가지 못한 게 몇 년째다. 아쉬운 맘에 가까운 이들끼리 모여 떡국을 먹고 윷놀이를 하며 보냈다. 올해는 설날 먹거리 준비로 가장 먼저 만두를 빚었다.
모처럼 빚는 만두라 그런지 아이들이 더 흥분했다. 시장을 같이 봐서인지 만두 속 왜 안 만드느냐 성화다. 시장에서 만두피를 사 오고, 폭신한 왕만두피의 식감이 그리워 이스트를 넣은 반죽도 따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 만들다 보니 아이들은 만두 만들자 하면 식당에서처럼 30분 만에 만두가 나오는 줄 알았나 보다. 이왕 만드는 거 선물도 할 겸 많은 양의 만두속을 만들다 보니 그 준비와 만드는 시간이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들락날락하던 아이들 입에서 조급함이 새어 나온다. 드디어 만두 만들기.
다들 만두피를 손에 놓고 만들다가 엄마가 만든 만두를 보더니 금새 모양을 따라 한다. 이렇게 솜씨도, 명절의 기억도 그 다음 세대로 전해지나 보다. 그렇게 왁자지껄 온 식구가 어울려 만두를 만드는 풍경, 바로 이것이 설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싶다. 이렇게 매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명절이면 고유의 음식을 만듦에도 이와 관련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다.
어느 날 둘째가 초등 3학년이 되던 해, 추석에 먹는 음식을 고르는 문제를 풀고 있었다. 자신 있게 떡국을 고르는 걸 보고 뒷목을 잡았다. 이곳에서의 십 년 넘는 세월을 추석 때마다 송편을 해 주었건만. 뿐이랴 설날에 먹는 음식은 또 반대로 골라 놓았다. 그런데 떡국을 일년 내내 시시때때로 먹고, 주변 마트에 가면 항상 있는 송편을 보니 아이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장에 가 조기를 사 와 시어머니가 전수해주신 방법으로 소금물에 절였다가 굴비를 만들어 냉동실에 넣고,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동태전도 부치고, 곶감에 호두와 잣을 박아 곱게 썰어 설날 간식거리도 만들었다. 올해는 유난히 엄마가 만드는 걸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 눈들이 초롱초롱하다. 내 어릴 적 엄마의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경이롭게 쳐다보던 나의 눈 그대로다. 그 눈들이 너무 귀해 올해는 타래과를 도전해 보려 한다. 타래과를 떠올리니 투박한 할머니 손이 생강을 으깨어 즙을 내시던 것부터 먼저 떠오르며 입에 침이 고인다. 훗날 설날만 되면 아이들의 기억 속에도 내가 타래과를 만들고, 전을 부치고, 만두를 빚던 모습들이 떠오르리라, 그 기억을 더듬어 본인도 달콤한 타래과를 시도해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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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고 있자니 올해 한국으로 갈 계획이 없는 나도 뭔가 일을 만들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몰려옵니다.
가까운 이들과 함께 모여 전도 부치고 갈비도 해먹고 떡국도 먹고 싶네요.
윷놀이도 하면 좋을거 같네요.
상해에서의 춘절보내기 ... 생각만해도 신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