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야 할 중국 근현대 문학가 6]
붓으로 민중을 깨치다 / 중국 문학의 아버지 ‘루쉰’
넬슨 만델라,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루쉰. 이들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그들은 법률가에서 인종차별 철폐로, 변호사의 길에서 인도 독립 운동으로, 의사라는 직업에서 문학의 길로 삶의 목표를 바꾼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루쉰은 1881년 9월 25일(음력 8월 3일), 중국 저장(浙江)성 사오싱(紹興)에서 태어났다. ‘루쉰’(魯迅)은 그의 필명이었으며, 원래 성은 저우(周)였고, 본명으로 알려진 수런(樹人)은 그가 17세 때에 학교에 들어가면서 바꾼 이름이다.
“대략 18년간 루쉰은 중국 문단의 중심적 위치에서 한 번도 물러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문단의 중심으로 뚜렷이 인식한 것은 그가 죽고 나서였다. 생전에는 그를 찬성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이 반반이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비난하는 쪽이 많았다. 살아생전 그는 문단 생활의 많은 부분을 논쟁 속에서 보냈다. 불량 학자, 타락 문인, 위선자, 반동 분자, 봉건 유물, 독설가, 변절자, 돈키호테, 잡문장이, 매판, 허무주의자 등 오로지 루쉰을 비방하기 위해 고안해낸 이 수많은 조롱들은 그가 사용한 필명에도 뒤지지 않을 다채로움으로 논쟁의 격렬함과 성격을 암시한다.”
-다케우치 요시미 ‘루쉰’ 작품 중
루쉰은 1902년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 의학전문학원에서 공부하게 된다. 그가 의학도를 그만 두게 되는 사정을 루쉰의 말을 통해 들어보자.
“당시 학교에서는 세균학 강의에 시간이 남을 때 학생들이게 시사에 관한 영화를 보여주었다. 러시아를 위해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참수당하는 동포를 무덤덤한 얼굴로 구경만 하고 있는 중국 구경꾼들. ‘대체로 무지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훌륭해 도 바보같은 구경꾼 밖에 되지 않는다.’나는 그들의 정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또 문학이 가장 적당한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눌함’ 자서
루쉰은 붓을 무기로 민중을 깨우치는데 헌신하기로 다짐했다. 1918년 문학 혁명을 계기로 ‘광인 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하여 가족 제도와 예교(禮敎)의 폐해를 폭로하였다. 이어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의 단편 및 산문 시집 ‘야초(野草)’를 발표하여 중국 근대 문학을 확립하였는데, 특히 대표작 ‘아큐 정전(阿Q正傳)’은 세계 문학 작품의 영역에 이르렀다.
|
1918년 5월 15일자 '신청년'에 수록된 루쉰의 첫 번째 단편소설 '광인일기' |
“가령 말이야, 쇠로 만든 방이 있다고 치자구.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데 머지 않아 모두 숨이 막혀 죽을거야.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서 비교적 정신이 있는 명을 깨운다면 임종의 고통을 주게 될텐데 미안하지 않겠어?”
“하지만 몇 사람이 일어난 이상, 그 쇠로 만든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외침' 서문
이 같이 그의 의지와 신념이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루쉰이 살았던 시대적인 상황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청나라가 멸망해가고 근대화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이다. 부패 관료의 횡포로 백성의 삶은 힘들어지고 새로운 혁명으로 나라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던 혼란의 시기였다. 영국과 치러진 아편전쟁의 패배로 굴욕적인 문호개방을 해야 했으며, 일본의 제국주의의 군화 발에 짓밟히는 수난을 겪었고 외국의 사상과 사회주의 사상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루쉰은 급변하는 세상을 옆에 두고 이유도 모른 채 열기에 휩싸여가거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을 아Q를 통해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켰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린 후에 그는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때린 것 같이 몹시 만족하여 의기양양 드러누웠다. 그는 푹 잠들었다.”
스스로를 때리면서 때린 '나'와 맞은 '나'를 분리하고, 때린 ‘나’를 기억하고 맞았던 ‘나’를 잊어버리는 아Q.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해 만족하므로 아Q는 단 한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못한다. 루쉰은 이를 ‘정신 승리법’이라 부르며 무지몽매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중국을 우려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루쉰을 통해 내 안의 아Q적인 모습은 없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지 못하고 핑계나 이유를 대며 위안했던 모습이 내가 몰랐던 아Q의 모습은 아닐까? 이처럼 루쉰의 글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한 울림을 퍼지게 하는는 것 같다.
‘노예는 정해진 길로 가길 원하지 낯선 길로 향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습속을 거부하지 못하며 자유 또한 체험하지 못한다.’
루쉰과의 만남은 내 안의 노예 근성은 무엇인지, 내가 ‘정신 승리법’으로 위장시킨 패배는 무엇이었는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역시 붓은 그 이상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일까.
▷고등부 학생기자 양근영(SAS10)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