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 칼럼]
'李코노믹스'
중국 경제에는 원초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진정한 불황을 겪어 보지 않았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극심한 경기 불황에 직면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모른다. 권력의 정당성을 경제에서 찾아야 하는 공산당 지도부에 불황은 곧 ‘공포’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경기가 악화된다 싶으면 정부는 바로 돈을 푼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약 4조 위안(약 700조원) 규모의 부양책을 내놓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덕택에 지표는 화려해졌지만 경제는 속으로 곪았다. 설비 과잉, 부동산시장 과열, 그림자 금융 등이 그래서 잉태된 고질이다. 중국 경제의 전형적인 발전 모습이다.
그런데 요즘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는 분명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데도 당연히 나와야 할 부양책이 제시되지 않는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지난 3월) 경기 살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은 빗나갔다. 정부는 오히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경제를 더 죄고 있다. 지난달 20일 벌어진 ‘콜 금리 사태’는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자금난에 봉착한 은행들은 으레 그랬듯 중국인민은행(중앙은행)에 돈을 풀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유모(乳母)론’을 들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중국인민은행은 더 이상 시중은행이 젖 달라고 울면 젖을 내주는 유모가 아니다’는 얘기였다. 방만한 자금 운용으로 자금난을 자초해 놓고는 인민은행에 손을 내미는 행태를 뜯어고치겠다는 개혁의지였다.
그 후 중국 언론에서 ‘리코노믹스(Likonomics)’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리커창 경제’라는 뜻. 우리 식으로는 ‘李코노믹스’로 표현할 수 있겠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인위적 부양책 억제, 부채 축소, 경제구조 개혁을 ‘李코노믹스’의 핵심으로 꼽기도 했다.
그동안 실시된 정책이 그런 식이었다. 핫머니를 잡기 위해 홍콩 통관서류를 일일이 뒤지는가 하면 세계 최대 태양광업체인 선택의 파산을 방치했다. 더 이상 경기 부양은 없으니 구조조정에 나서라는 신호였다.
전문가들은 ‘李코노믹스’의 최종 지향점이 ‘좐볜(轉變)’에 있다고 말한다. 투자•수출에 의존했던 성장 패턴을 소비가 이끄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경제구조 개혁 없이는 ‘중진국의 함정’을 피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불황 공포에 굴복해 다시 돈을 풀 수도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겠다는 그의 의지는 아직 확고해 보인다. ‘모든 발전은 개혁에서 나온다(一切發展, 與改革相連)’며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던 주룽지(朱鎔基) 총리를 연상케 한다.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박근혜정부에도 ‘근혜노믹스’라는 게 있다. 그러나 ‘근혜노믹스’는 아직도 구체적인 타깃을 잡지 못하고 혼선을 빚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중국과는 체제가 다른 줄 알면서도 자꾸 ‘李코노믹스’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