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를게 없었다.
“음, 감자튀김하나, 콘 샐러드 하나, 콜라 하나….”
튀김 닭으로 유명한 KFC에 와서 닭을 달라고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하나. 최소한의 닭 봉 몇 개, 가슴살 튀김 몇 개를 올려놓고 파는데 냄새를 맡은 이상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었다.
“너흰 어린이니까 먹지 마. 엄마는 어른이니까 이러 하나 먹는다고 이상해지진 않아!”
두툼하게 입안으로 들어오는 닭다리 튀김은 입술 가득 따뜻한 기름칠로 닭다리만 쏙 뽑아내는, 한 달 만에 맛보는 ‘꼬기’맛에 황홀경이 따로 없었다.
절대 안 먹겠다는 두 딸의 표정이 슬쩍 흔들리더니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며 나를 본다.
“닭다리 두 개 추가” 어쩌겠나. 엄마 입만 입인가.
괜찮다고 하잖아~ 고온에서 튀긴 건 더 괜찮다고 하잖아~. 먹다 보니 간에 기별도 안가서 다시 주문하니 워낙 안팔려 준비를 조금밖에 못해 더 이상 닭이 없단다. 아, 이런 아쉬울 때가 있나.
딱! 한 달 전일이다. 신종 AI가 발표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작은 아이 로컬 유치원에서 점심에 닭고기가 나왔다.
“라오스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는데 엄마 나 무서웠어.”
그 말에 유치원으로 바로 항의를! 나 같은 엄마 극성에 유치원에서는 며칠 뒤에 아이들 신체검사와 체내 중금속 검사를 한다고 어수선 떨며 일을 마무리 하고자 애썼던 일도 있었다. 그 예민한 호들갑도 꼬기 없이 한 달을 넘기니 힘들었다. 이 눔의 나라는 왜 강에 돼지가 떠다니고, 닭 잡으면 병에 걸리는지 도대체 맘 놓고 먹을 게 뭐냐며 대상도 없이 화도 내 봤지만, 꼬기 사랑이 넘치는 우리 집에서 꼬기 반찬 없는 한 달은 ‘3G 안 터지는 스마트폰이요, 유재석 없는 무한도전’이었다. 길을 걷다 잠시 쉬어가자고, 사람도 없는데 시원하니 좋겠다고 들어간 KFC에서 우린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 거다.
그렇게 신종 AI파동 이후 한 달 만에 닭고기를 트고 나니 눈도 밝아지는 거 같고 피부도 윤기가 도는 거 같고, 허하기만 했던 채소 밥상이 꼬기 한 접시에도 황제의 밥상 부럽지 않아지는 거다. 신종 AI해제가 되었어도 6개월은 조심해야 한다는 지인들의 조언(!)에 콧방귀를 끼며 주말에도 신나게 통닭을 시켜놓고 앉아 닭다리를 뜯으며 신문을 펼쳤는데… 가을에 신종 H7N9형 조류인플루엔자(AI)위험! 이 기사가 웬 말이냐.
나의 어린 시절, 먹성 좋은 5남매의 밥상엔 고기반찬이 늘 올라왔다. 좋아하는 고기반찬 앞에서 젓가락을 들고 눈싸움이 먼저였다. 서로 먼저 먹으려는 눈싸움이 아니라 ‘진짜 꼬기’를 골라내기 위한 꼬기와 나의 눈싸움이었다. 아이가 많아선지 엄마는 늘 콩으로 만든 가짜 고기와 진짜 고기를 섞어서 불고기도 만드시고 닭볶음탕도 만드시고 자장면도 만들어주셨는데 콩으로 만든 가짜 고기는 딱 씹어야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골라먹음 혼이나니 진짜 고기를 찾아 눈싸움을 열심히 해서 딱 집어서 진짜 고기를 먹었을 때의 희열이란!!!
“골라 먹지 말고 건강 생각해서 엄마가 준비하신 콩 고기니깐 진짜 고기처럼 먹어~!”라고 엄포를 놓는 큰누나였지만 나는 진짜 꼬기만 골라내며 말 젤로 잘 듣는 동생 밥 위에 얹어주곤 했다. 지금 먹을거리에 비하면 그땐 참 건강하고 깨끗한 식재료인데도 엄마는 콩고기, 생선어묵, 떡, 육포를 직접 만들어 먹이셨다. 잘 먹고 잘 커서는 내 아이에게 그렇게 못해 먹이고 사는 내가 엄만가 싶다.
로컬 브랜드 중에 믿을만한 닭 브랜드를 골라 찜닭을 했다. 엄마표가 최고라고 좋아하는 아이들 앞에서 언제쯤 맘 놓고 이것저것 걱정 없이 먹이나 걱정이 됐다. 가을이 오면 또 못 먹는 꼬기인가. 무사히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래본다.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