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점점 흐르~고 소녀는 울음 참지 못해~"
아침 이른 시간에 남편의 전화벨이 울린다. 잠결임에도 순간 남편의 얼굴엔 뭔지 모를 긴장감이 보인다. 언제부턴가 아침 이른 시간이나 저녁 늦은 시간에 전화가 울리면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흐른다. 아마도 고국에 계시는 부모님들이 연로하신 탓이리라.
"여보세요?" 잠이 덜 깬 남편의 목소리.
이어져 "그래, 웬일이야?"
남편의 안도하는 목소리와 전화기 너머로 아들의 목소리가 약하게나마 전해져 온다. 갑자기 남편이 일어나며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매우 반가운 목소리로 통화를 한다. 한참을 통화한 후 남편이 말한다.
남편은 전방인 3사단 공병대대 군수과에서 근무했다. 그 3사단 백골부대에서 우리 아들이 또 근무한다. 작년 1월 입대한 아들은 아빠가 근무했던 3시단으로 배치를 받았다. 전방이지만 익숙한 곳이라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아들 또한 해외에 있는 부모의 사정을 알고 잘 참고 잘 적응하니 감사하다.
남편이 근무하던 시절 국방부에서 전방지역, 민통선지역 국유지 정리사업을 하였다고 한다. 도·군청 출입이 잦았는데 군인 신분으론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있어 문관을 채용하였는데, 남편과는 전역할 때까지 1년 반 정도 함께 근무했다고 한다. 그 지역 토박이인 문관은 수시로 불러내 함께 식사도 하고 여러 가지로 남편을 챙겨주었고, 남편의 전역회식 때는 '이동' 양조장까지 가서 막걸리를 받아와 회식을 하였다고 한다. 남편은 전역하고 얼마 후 그분도 군무원직을 퇴직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0년 후.
아들이 백골부대로 배치되었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남편은 간간이 그분 이야기를 하였다. 그밖에 함께 근무했던 방위들 이야기를 해주며 군생활을 추억하곤 했다. 아들이 대민봉사를 나왔는데, 역시나 대민지원을 나온 지역분들과 이야기하다가 그분과 얘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던 중 아빠가 3사단 공병대대 군수과에서 근무했다고 하니 그분이 자세하게 물었나 보다.
아빠 이름을 이야기하고 상하이에 살고 있다는 얘기 이런저런 근황을 얘기하고 그 분 전화기로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남편의 입가엔 웃음이 번지고 눈가엔 머나 먼 30년전 그 때로 돌아가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기억해주고 아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실 모습이 그려지며 감사함을 전한다.
어제 아들에게서 오랜만에 편지를 받았다.
훈련병때 집을 그리워하고 낯선 환경으로 살짝 두려움이 있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여유가 있어 보였다. 가까운 이웃의 안부도 묻고 부모님의 건강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많이 성숙한 것을 느꼈다. 편지는 남편과 나에게 각각 썼는데 그 내용이 또 각각이다. 이미 장성한 아들로 나에겐 어머니이자 여자로였지만,
남편에게는 같은 남자로 또 우리나라에서만 알 수 있는 같은 추억을 공유 할 수 있는 그런 친밀함이. 그런 생활을 알 수 없는 나에게 잠시 질투(?)의 감정도 있었지만 아들의 편지로 많이 행복했다. 그러면서 우리 조국을 위해 지금 군복무 중인 우리의 아들들을 위해 한없는 사랑을 보내며, 멈추지 않고 그들을 위해 조국을 위해 신께 어머니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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