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너무 가둬 키우지 마라!”
“마마보이 되면 곤란해!”
“뭣이든지 엄마한테 기대게 하면 안돼!”
“혼자 길 건너게 내버려 둬라!”
“가스불도 켜보게 하고, 혼자 라면 정도는 끓여먹게 해야 돼!”
“뭣이든 엄마가 다 해주는 버릇들이면 나중에 OO엄마만 힘들어져. 빨리 빨리 떼라!”
이 말들을 듣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다. 이젠 다 컸다고 몸이 살짝 스쳐도 짜증부터 낸다. 무슨 자신의 몸에 붙은 금을 내가 무허가로 떼내기라도 하는 양, 길거리를 가면서 목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엄마 때문에 창피해서 못살겠다고 투덜거린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에게 고개만 끄떡거리는 모습이 눈에 거슬려 잔소리라도 하면, 마치 엄마를 남인양, 혼자 발걸음을 빨리 해버리기도 한다.
이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라도 하듯, ‘그래, 옆집 아드님대하듯이 하랬지’ 맘속으로 다져보지만, 가슴 한구석에선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으으윽~~~~ 한 대, 두 대, 콕 콕 쥐어박고 싶다.
지난 목요일엔 방과후수업을 마치고 같은 동네 친구랑 9호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끼여와도 마냥 즐겁고 신났단다. 전철역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서 먹은 꼬치는 정말 맛이 일품이었다고 저녁 내내 “아~ 또 먹고 싶다~~”를 연신 입에 달고 있었다.
‘다 컸네.’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시내에 나갈 때면 혹여 내 시야에서 안보이게 될까봐 연신 손을 잡고 다니던 때가 그다지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이젠 이 엄마의 도움을 받았던 시절을 기억 저 편에 묻어두기라도 한 듯, 마치 어느 날 혼자 훌쩍 커 버린 양, 방에 들어갈 때면 꼭 방문을 닫는다. 내가 어쩌다 노크를 잊고 그냥 들어갈 때면 꼭 한마딜 덧붙인다.
“교양 좀 가지세요.”
교양? 교양을 가지라고? 나름 있다고 여겼던 교양, 너 때문에 하나씩 하나씩 무너져서 이젠 교양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교양이라는 말과 친하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나 싶다.
지난 겨울방학 때 만난 조카도 작은아이와 동갑내기이다. 걔도 입이 부루퉁하니 나와 있었다. 온 세상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입안에 다 담고 있는 듯, 정작 말을 시키면 “네~ 네~” 이런 단세포적인 말 이외의 말은 듣기가 어려웠다. 고모한테 예쁘게 대답하지 않는 딸아이가 마음에 안 찬 듯, 올케가 설거지 하면서 말을 건넸다.
“옆집 순이님 대하듯 하고 있어요. 작년하고 너무 다르네요. 다들 사춘기라고 봐주라고 하는데, 아~ 정말 힘드네요.”
그래, 나도 옆집 아드님 한 분 모시고 산다. 옆집 아드님 이라는 걸 깜빡 잊는 순간, 우리는 불꽃이 튀기 시작해. 말이 좀 통하네 싶다가도 또 제자리, 모두가 다 엄마 탓! 탓! 탓!
“코밑에 수염이 새까매지고 있네”
외할아버지가 한 말씀이다.
“저 수염 때문인지 지독히 말을 안 들으려고 해요. 말끝마다 토를 달려고만 하고, 그냥 예스하는 법이 없어요.”
“놔둬 버려라.”
“가만히 놔둬요. 뭘요? 수염을요? 아님, 애를요?”
“둘 다 가만히 놔 둬라. 좀 있으면 다 알아서 한다. 혼자서 수염도 밀거고, 알아서 저 할일 찾아서 할거다.”
“제가 요즘에 늙어요. 쟤 땜에 늙는다구요.”
나이드신 아버지 앞에서 내 자식에 대한 하소연을 시작해봤다. 서로 자꾸 이기려고만 하니깐, 부딪히는 거다. 가만히 내버려둘 줄도 알아야 한다. 가만히 기다려봐라. 다 자기가 알아서 하게 된다. 조금 조급해한다고 빨리 갈 것 같아도 그렇지도 않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었던 글귀로 나 자신을 위로해본다. 그 작가가 한 말이었다.
“동생은 너무나 모범생이어서 엄마가 상전을 모시듯 조심스럽고 어려워만 하셨다고. 반면에, 온갖 말썽이란 말썽은 다 피웠던 자신 때문에, 어머니의 삶이 오히려 더 풍요로워졌노라고.”